주리론

주리론

[ 主理論 ]

시대명 조선

의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의 우위를 주장하는 이론.

「주리」라는 말은 이 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대체로 영남지방의 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처음 이황이 이와 기가 서로 작용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을 통해 이의 우위와 능동성을 주장한 이후 영남학자들은 별다른 논란 없이 이를 받아들였는데, 기호학자들이 의 「기발이승도설(氣發理乘途設)」에 따라 이의 무능동성과 기의 능동성을 주장하자, 이기론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황의 학설을 옹호하는 학파의 성격을 강화해갔다. 그것은 이황이 죽은 뒤 100년이 지난 17세기후반 이현일(李玄逸)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는 이이의 성리설을 19조목으로 비판했다.

그의 아들 이재(李栽)는 한걸음 더 나아가 기의 작용을 기다리지 않고 이만으로도 이미 만물의 체용(體用)을 갖추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상정(李象靖)을 거쳐 유치명(柳致明)에 이르면 주리론은 한층 강화되어, 이가 우주의 주체이자 마음의 본체라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의 일부 학자들도 주리론을 주장했는데, (李恒老)는 이의 우위를 인정하는 입장이었고, 기정진(奇正鎭)은 일반적인 주리론에서 더 나아가 기가 이에 포함된다는 극단적인 「유리론(唯理論)」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주리론은 과 조선 후기 내내 학문적·정치적으로 대립, 발전했으며, 정치 및 사회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