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산 농민봉기

대성산 농민봉기

시대명 조선
연도 1446년(세종 28년) ~ 1447년(세종 29년)

1446~47년(세종 29) 평안도 평양의 대성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봉기.

1444년 의 실시로 농민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전세가 부과되었고, 30년대 이후 공물이나 부역의 부담이 더 커졌다. 특히 평안도 농민들은 다른 도보다 훨씬 많은 부역을 부담해야 했는데, 42년의 기록에 의하면 다른 도에서는 5~6명이 1자의 폭으로 성을 쌓는데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한 사람이 3~4자의 폭으로 성을 쌓아야 했다고 한다. 1446년 평안도 여러 지방의 농민들이 무장하고 대성산에 모여, 폭정을 하는 관리를 처단하고 빼앗겼던 물품은 되찾아주었다. 여기에는 양인 농민뿐만 아니라 노비나 등 여러 계층 사람들이 광범히 참여했으며, 이들은 병마사영이 있는 서북지방의 중심지 평양의 대성산에 본거지를 가지고 있었다.

1447년 대성산 전투에서 많은 지휘관을 잃으면서 폭동군은 대성산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 봉기는 15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난 첫 농민봉기였으며, 15세기 후반에 벌어진 농민폭동에 농민을 참가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