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규장각

[ 奎章閣 ]

시대명 조선

조선 후기의 관청. 일명 내각(內閣)이라고도 한다.

희귀도서와 왕의 글씨·그림·유언서·명령서· 초상·왕실의 족보 등을 보관했으며 서적을 간행했다. 조선 전기 와 성종 때도 왕의 글과 글씨 등을 보관하기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조는 1776년 즉위 후 곧 궁궐 안에 규장각을 설치하고 직제를 갖춘 독립기구로 만들었다. 이때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척신(戚臣)과 환관(宦官)의 음모와 횡포를 제거하고 정치를 개혁해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학식이 높은 사람을 모아 학문을 토론하고 국가적 규모로 도서를 수집, 간행함으로써 봉건적 유교사상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재능있는 학자들은 규장각 관리로서 토지와 그 밖의 재산을 받는 등 특별히 우대되었으며, 규장각은 출신의 학자가 관직에 오르는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조의 통치권이 확립됨에 따라 규장각은 점차 학문 및 정책을 연구하고 기획하는 학술기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서관을 규장각 외각으로, 궁궐 안의 본래의 규장각은 규장각 내각으로 구분했다. 1781년에는 강화에 서로를 따로 설치했으며(강도외각), 규장각 내각 안에 도서를 보관하는 장서각으로 서고(西庫, 조선책 보관), 열고관(閱古觀, 중국책 보관)을 두었다. 또한 서호수(徐浩修)로 하여금 보관도서를 정리해 도서목록인 을 작성했는데, 이것이 3만여 권에 달하는 현재 규장각 도서의 원류이다. 많은 규장각 도서가 일제통치기 동안 에 넘어갔을 것으로 보이며, 강도외각에 보관되어 있던 도서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약탈당했다. 후 총독부가 규장각 도서를 관리하다가 설립 이후에는 대학 안에 보관했다. 해방 후 서울대에서 인수해 현재 관리,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