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

장희빈

[ 張禧嬪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659년 ~ 1701년(숙종 27년)

조선 숙종의 빈인 소의 장씨. 1688년(숙종 14) 뒤에 경종(景宗)이 된 왕자 윤(昀)을 낳았다.

왕자가 없던 숙종은 서둘러 균을 세자에 책봉하려 했으나, 은 왕비 민씨가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내세워 반대했다. 이에 노한 숙종은 서인을 몰아내고 권대운(權大運)·김덕원(金德遠) 등 을 등용했으며(), 소의 장씨를 희빈에 봉하고 윤을 세자에 책봉했다. 이로써 서인정권은 몰락하고 남인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숙종은 다시 왕비 민씨를 폐하고 장희빈을 왕비에 앉혔다(1689. 5). 그러나 숙종은 점차 민비를 폐비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소론의 일파가 민비 복위운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남인정권은 이를 소론의 제거에 이용하려 했으나, 숙종은 도리어 남인을 제거하고 소론을 등용했으며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해 폐비시키고 민비를 다시 왕비로 맞아들였다().

이후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張希載)가 민비를 해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 발생했다. 조정에서는 이 사건을 놓고 장희재와 장희빈에 대한 처벌이 논의되었으나 세자에게 해가 끼치는 것을 염려해 용서해주었다. 그러나 왕비 민씨가 죽은 후 장희빈이 자신이 거처하던 취선당 서쪽에 신당(神堂)을 차려놓고 민비가 죽기를 기도한 사실이 발각되어 장희빈과 장희재는 처형되었으며 그 집안과 무당도 화를 입게 되었다(무고의 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