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박지원

[ 朴趾源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737년(영조 13년) ~ 1805년(순조 5년)
본관 반남(潘南)
이명 : 중미(仲美)
: 연암(燕巖)
직업 실학자, 소설가

조선 후기의 자·소설가.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본관은 반남.

젊어서 벼슬을 하지 않고 황해도 금천의 산속에서 국내외 학자들의 저작을 연구하고 정치·경제·군사·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공부에 열중했으며, 50살에 비로소 관직에 올라 판관과 안의, 양양 등을 역임했다. 실학자 에게서 및 자연과학을 배워 을 주장했으며, ··이서구 등과도 교유했다. 또한 사신의 행렬을 따라 청에 갔다가 청나라의 문물이 조선보다 발달한 것을 보고 이를 받아들일 것을 주장해 의 영수가 되었다.

흔히 그는 중상적 실학자로 분류되는데, 차별의 철폐, 화폐제도의 개혁, 상업의 발전 등을 통한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청나라를 왕래하던 중 보고들은 것을 적은 열하일기> 등에서 많은 한문소설을 남겨 위정자들의 부패와 무능을 풍자적으로 비판했다. 농정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정조의 요청을 받고 1799년(정조 23) 과농소초>에 1편을 첨가해 올렸는데, 여기에서 그는 토지소유의 제한과 농업기술의 발전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