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김정희

[ 金正喜 ]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1786년(정조 10년) ~ 1856년(철종 7년)
본관 경주(慶州)
이명 : 원춘(元春)
: 완당(阮堂), 추사(秋史)
직업 학자, 서화가

조선 후기의 학자·서화가.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 본관은 경주.

1819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이 대사성, 이조참판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헌종의 묘를 옮기는 문제를 둘러싸고 귀양을 가는 등 모두 13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다. 박제가에게서 배웠으며, 24살 때 부친을 따라 연경에 가서 당대의 대유학자로 꼽히던 완원(阮元)·옹방강(翁方綱) 등과 교유하고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이의 영향으로 경학과 고증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학문연구의 중요한 목적은 실사구시로 그것은 훈고(訓詁)로써 실천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금석학에 몰두해 16년 종래까지 무학(無學)의 비석으로 알려져 있던 북한산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해냈다.

도서·시문·지리학·음운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특히 글씨에서는 특정한 서체에 구애되지 않고 역대 명필의 장점을 모아 추사체라고 불리는 독특한 서체를 개발해 예서와 행서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해냈다. 그림으로는 대나무와 산수를 잘 그렸다. 그는 단순한 학자나 예술가가 아니라 다양한 학문분야를 섭렵하고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소화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선구자이며, 실증적인 실학의 학문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뛰어난 학문은 청의 대유학자들이 그를 가리켜 해동제일통유(海東第一通儒)라고 불렀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