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박해

기해박해

[ 己亥迫害 ]

시대명 조선
연도 1839년(헌종 5년)

1839년(헌종 5)에 일어났던 천주교에 대한 탄압사건.

와 당시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으로 천주교의 교세는 현격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1802년 순조가 의 딸을 왕비로 삼은 이후 시파에 속하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탄압이 약화되자 천주교의 교세는 다시 확대되고 신자 수는 늘어갔다. 36년 프랑스의 외방전교회의에서 조선교구를 독립시키고 선교사 모방, 샤스탕, 앙베르 등 3명을 비밀리에 조선에 파견해 전도에 종사하게 하자 비밀교회가 생겨나고 신자 수는 늘어났다.

그러나 순조가 죽고 헌종이 8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게 된 순원왕후(純元王后)는 벽파인 풍양 조씨와 손을 잡고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을 시작했다. 조선정부는 39년 3월 다시 사학(邪學) 금지령을 내리고 천주교도를 대량 체포했으며 7월에는 서양선교사 3명마저 처형했다. 천주교도의 적발방법으로는 5가작통법을 적용했다. 기해박해는 기간은 신유박해보다 짧았으나 그 범위는 전국적이었으며 탄압의 강도도 훨씬 강해, 10개월 동안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경기, 서울 일대에서는 많은 순교자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