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학

고증학

[ 考證學 ]

시대명 조선

명나라에서 유행한 에 반발해서 청나라초에 나타난 유학의 학풍.

고염무(顧炎武)에 의해 제창되었다. 의 공리공론과 독단적인 해석을 비판하고 적인 학문을 주장했으며, 경사(經史)등을 엄밀한 고증에 의해 연구하는 훈고학적 방법론을 채택했다. 그러나 청조의 탄압을 받으면서 실용적인 학문경향은 약해지고 점차 경서의 고증에만 치우치게 되었다. 그 대상은 경학·사학·지리학··음운학·문자학·천문역학 등에 걸쳐 있으며, 염약거(閻若璩), 호위(胡渭) 등에 의해 대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유교경전에 대한 연구방법으로 채택되었으며, 역사·지리학 등의 연구에도 이러한 학문태도가 널리 활용되었다. 특히 에 의해서 절정을 이루어 성리학적인 연구방법을 비판하고 실사구시와 실증적인 학문태도를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에 도입된 고증학은 학파를 이루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