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의 역사

메리다의 역사

에스파냐 인들이 도시를 건설하기 이전에 메리다 지역에는 마야(Maya) 도시 토(T’hó)가 있었다. 토는 ‘다섯 개의 언덕이 있는 도시’라는 의미의 ‘이치칸시오오(Ichkanzihóo)’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이 도시에 다섯 개의 피라미드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토는 수 세기에 걸쳐 마야 인들의 중심지였다. 유카탄(Yucatán) 반도에 거주하던 마야 인들은 에스파냐 인들의 정복 초기에 강하게 저항하였으며, 이 때문에 이 지역의 에스파냐 정착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세워졌다.

메리다는 1542년 유카탄 지역의 지배 근거지로서 프란시스코 데 몬테호(Francisco de Montejo) 일가의 주도로 건설되었으며, 에스파냐 인 100가족 정도가 초기에 정착하였다. 메리다는 마야 도시 토 위에 세워져 식민 시기에 건설된 건축물 중에는 마야 인이 사용하던 석재로 지어진 경우가 다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메리다 성당의 벽이다. 식민 초기에 유카탄 반도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Virreinato de Nueva España)이 위치한 멕시코시티(Mexico City)로부터 1,560㎞ 거리에 위치한 먼 지역이었기 때문에 에스파냐 왕실이 직접 지배하였다.

17~18세기에 마야 원주민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메리다의 시가지 주변에 성곽을 둘러쌓았다. 20세기 들어 시가지가 성장하면서 성곽은 대부분 헐렸으나, 성곽의 성문들은 아직도 남아 있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하자, 유카탄 지역은 지리적으로나 민족적으로 근접한 과테말라의 마야계 인구와 같이 자치체를 이루기를 원하였다. 1823년에 유카탄 지역이 멕시코에 편입되었으나, 자치 정부를 설립하려는 세력과 멕시코 중앙 정부로 예속되려는 세력 간의 의견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1838~1843년 사이에 유카탄 지역은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멕시코 중앙 정부에 예속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유카탄 지역에 에네켄(henequén: 용설란) 산업이 번성하면서 중심 도시인 메리다도 번영하였다. 20세기 초에 메리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만장자가 사는 도시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였다. 당시 부유층들이 거주하던 파세오데몬테호(Paseo de Montejo)에는 화려한 저택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는데, 오늘날 이곳은 메리다의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의 부를 반영하듯, 메리다 중심 시가지의 역사 지구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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