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풀코의 역사

아카풀코의 역사

가. 식민 이전

아카풀코 지역은 8세기경부터 올멕 족(Olmecs)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육로로는 멕시코 중앙부와, 해로로는 테우안테펙 지협(Istmo de Tehuantepec)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여러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쿠에르나바카(Cuernavaca)와 칠판싱고(Chilpancingo)를 거쳐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멕시코시티 근처의 도시 국가로,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8세기 중엽까지 번영함) 문화가 전파되었고, 테우안테펙과 오악사카(Oaxaca) 지역을 통해 마야(Maya) 문명이 전파되었다.

11세기경에는 아즈텍 족(Aztecs)의 조상인 나우아 족(Nahuas)과 코익스카 족(Coixcas)이 이주해 오기도 하였으며, 이후 군사적 충돌로 아카풀코 지역은 아스테카(Azteca)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아카풀코에 대한 아스테카 왕국의 지배는 오래가지 못하였고, 요페 족(Yopes)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문명권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문명권 ⓒ 푸른길

나. 식민 시기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órtes)는 아스테카 왕국을 정복한 이후 금을 찾아 원정대를 보냈다. 1523년 원정대는 아카풀코 지역에 도착하여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1526년에 첫 번째 엥코미엔다(encomienda)가 현재의 아카풀코에 설립되었다. 엥코미엔다는 일종의 봉건제로, 귀족이나 군인들에게 넓은 땅과 함께 그 안에 있는 원주민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까지 허용하는 제도였다. 1531년에 후안 로드리게스 데 비야푸에르테(Juan Rodríguez de Villafuerte)를 비롯한 에스파냐 인 무리가 오악사카 해안 지대에서 아카풀코로 이주해 와서 마을을 건설하고 이름을 ‘비야푸에르테(Villafuerte)’라고 명명하였다.

요페 족과의 무력 충돌이 있고 나서 이 지역에 로드리게스데비야푸에르테(Rodríguez de Villafuerte) 엔코미엔다를 설정하였다. 이후 코르테스는 아카풀코를 식민지의 주요 항구로 삼고 부두 및 항구 관련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멕시코시티와 연결되는 도로를 건설하였다. 아카풀코는 곧 이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 지정되었고, 1599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1550년부터 아시아와 아카풀코 간을 오가는 무역선(Galeón)이 운항되었고, 이후 식민 기간 동안 아카풀코는 베라크루스(Veracruz)와 함께 에스파냐 식민지에서 매우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필리핀의 마닐라(Manila)로부터 아카풀코를 거쳐 베라크루스로 이어진 무역 노선은 다시 유럽으로 이어졌으며, 당시 동양의 도자기, 비단, 향신료 등의 고가품들이 이 노선을 통해 수송되었다. 1593년에 아카풀코는 마닐라와의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19세기까지 마닐라와 아카풀코 간의 무역선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운항되었다. 무역선에 실린 값비싼 물품은 영국과 네덜란드 해적 및 해군의 표적이 되었다. 이에 해적들로부터 아카풀코 항과 무역선을 지키기 위하여 산디에고 요새(Fuerte de San Diego)가 건설되었다. 해적들은 무역선을 공격할 뿐 아니라 항구를 공격하여 항구 시설을 파괴하고 물품을 약탈하기도 하였는데, 1615년에 네덜란드 함대가 아카풀코를 공격하여 도시를 완전히 파괴시킨 일도 있었다. 1776년에는 지진으로 아카풀코 시가지가 거의 파괴되어 1783에야 재건되었다.

19세기 초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 4세(Carlos IV)가 아카풀코를 ‘공식 도시’로 선언함으로써 아카풀코는 에스파냐 왕국에서 매우 주요한 지역으로 인정받았다.

다. 독립 이후

1810년 독립 전쟁이 시작되자, 독립 세력은 아카풀코를 점령하였다. 그 여파로 1815년에 아카풀코 갈레온(Galeón de Acapulco) 무역이 종료되면서 에스파냐 식민지 무역항으로서의 중요성은 감소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골드러시(gold rush)가 일어 파나마와 캘리포니아 사이의 중간 기착지로서 기능하면서 경제는 회복되었다.

20세기 초, 당시 영국의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8세(Edward VIII)가 아카풀코를 방문한 이후에 지인들에게 추천하면서 아카풀코는 귀족과 상류층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텍사스 자본이 유입되어 호텔 지구가 조성되면서 아카풀코 절벽에는 고급 빌라와 호텔이 건설되었다.

1950년대에는 항구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고, 멕시코시티와 아카풀코를 연결하는 멕시코의 첫 번째 고속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1954년에 후안알바레스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General Juan N. Álvarez)이 건설되었다. 1950년대의 아카풀코는 미국의 부유층, 특히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관광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해안을 따라 고층의 호텔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아카풀코는 멕시코 중산층과 외국인들이 찾는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1964년에는 미국과의 직항 노선이 개설되었다. 당시 비행기를 이용하여 아카풀코를 찾는 관광객들을 제트셋(Jetset)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 멕시코시티와 아카풀코 간에 루타델솔(Ruta del Sol)이라는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여, 두 도시 간의 시간 거리가 3시간 반으로 줄어들면서 더욱 많은 멕시코 시민들이 아카풀코를 찾게 되었다. 아카풀코 항의 물류 유동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태평양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996년에 민간 회사인 API 아카풀코(Administración Portuaria Integral de Acapulco)가 항구의 운영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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