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보라레도의 역사

누에보라레도의 역사

누에보라레도(Nuevo Laredo)의 초기 역사는 이웃한 러레이도(Laredo)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리오그란데 강 유역에는 14세기경부터 코아우일테칸 족(Coahuiltecan) 인디언이 처음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유럽 인들은 18세기 무렵에야 이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1755년 에스파냐의 돈 토마스 산체스(Don Tomás Sánchez)가 처음으로 현재의 텍사스 주 러레이도에 해당하는 리오그란데 강 북쪽의 변경 지역에 정착지인 비야데산아구스틴데라레도(Villa de San Agustin de Laredo)를 건설하면서, 러레이도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Virreinato de Nueva España)의 누에보산탄데르(Nuevo Santander) 지역에 편입되었다.

1767년 누에바에스파냐의 부왕은 호세 데 에스칸돈(José de Escandón)에게 이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고, 이후 약 100년간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처음 리오그란데 강 북쪽에만 만들어졌던 도시는 점차 강의 남쪽으로 확대되어 일부 주민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1840년 러레이도는 리오그란데 혁명을 통해 수립된 리오그란데 공화국(República del Río Grande)의 수도가 되었지만, 멕시코가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면서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1846년에 발발한 멕시코-미국 전쟁에서 멕시코가 패배하면서, 1848년 2월 체결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eaty of Guadalupe Hidalgo)에 따라 도시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리오그란데 강 북쪽 지역이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주민들은 곧바로 미국 정부에 러레이도를 멕시코에 반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멕시코 국민으로 남기를 희망한 러레이도의 17가구가 리오그란데 강 남쪽의 멕시코 영토로 넘어와 정착하였다. 이들은 마을 이름을 누에보라레도로 정하고 멕시코 인임을 선언하였으며,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기로 결정하였다.

국경선이 새로 설정된 이후 누에보라레도는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한 멕시코 중부의 최대 인구 밀집 지역과 미국을 연결하는 교통과 운송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883년에는 누에보라레도와 러레이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처음 완공되었으며, 이후 2014년 현재까지 철도 전용 1개를 포함하여 총 4개의 다리가 건설되었다.

연관목차

375/1205
4. 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