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우아칸의 역사

테우아칸의 역사

가. 선사 시대–농경 문화의 발상지

홍적세 말에서 후빙기로의 전환기였던 기원전 10000~7000년경부터 테우아칸 계곡 일대에는 채집과 수렵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소규모 단위로 거주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고고학자 리처드 스톡턴 맥네이시(Richard Stockton MacNeish)의 주도로 ‘테우아칸 프로젝트’라고 불린 대규모 고고학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테우아칸 계곡의 콕스카틀란(Coxcatlan) 동굴 일대에서 기원전 5200~3400년경 주민들이 야생종을 개량하여 '옥수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테오신테(teosinte)'라는 최초의 옥수수 종을 재배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콕스카틀란 동굴에서는 옥수수 이외에도 기원전 2950~225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불에 탄 고추씨도 발견되어, 이 지역이 인류 농경사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옥수수 재배에 관한 고고학적 흔적이 발견된 콕스카틀란 동굴은 엄밀하게는 테우아칸이 아닌 이보다 더 동남쪽의 오악사카(Oaxaca) 주와의 경계에 있는 콕스카틀란 지구(municipio)의 행정 구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지역 전체가 테우아칸 계곡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테우아칸-콕스카틀란으로 불리며, 유사한 증거들이 오악사카 주의 중앙 계곡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이 지역 일대에서 농경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농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계절에 따른 이동 생활을 계속하였으며, 본격적인 정주 마을의 건설은 농경의 시작으로부터 4,000~5,000년 후에나 이루어졌다.

나. 역사 시대

테우아칸 일대에 최초로 마을을 형성한 것은 포폴로카(Popoloca) 부족으로, 이들은 처음에 오늘날의 산타마리아코아판(Santa Maria Coapan) 지역에 마을을 건설하였다가 이후 구(舊)테우아칸(Tehuacan Viejo)으로 불리는 칼카우알코(Calcahualco) 지역으로 옮겨 왔다. 1454년 아스테카(Azteca) 왕국의 목테수마 1세(Moctezuma I)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아스테카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1521년 아스테카 왕국이 에스파냐에 멸망하면서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다.

에스파냐는 식민지 초기인 1540년 테우아칸에 정착지를 건설하였으며, 이 도시는 멕시코 만의 베라크루스(Veracruz) 항에서 현재의 멕시코시티에 해당하는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에 이르는 왕립 도로(Camino Real)의 일부로 발달하였다. 1660년에는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ña)의 부왕(副王)으로부터 ‘인디언의 도시(Ciudad de Indios)’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1810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독립 전쟁 당시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José María Morelos), 니콜라스 브라보(Nicolás Bravo), 마누엘 미에르(Manuel Mier y Terán) 등이 테우아칸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는데, 초기 독립 전쟁을 이끌던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 y Costilla) 신부가 에스파냐에 의해 처형된 이후 모렐로스가 독립 투쟁을 주도하면서 1813년에 일시적으로 독립 정부의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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