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의 사회

칸쿤의 사회

칸쿤 지역에 살던 마야 족의 이름은 ‘니숙(Nizuc)’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에스파냐의 정복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쟁과 기근, 질병 등으로 사라지고 무헤레스 섬(Isla Mujeres)과 코수멜 섬(Isla Cozumel)에 소수만이 남았다. 칸쿤은 멕시코시티로부터 1,700㎞나 떨어져 있어 에스파냐 인들의 침략 이후에도 식민 지배의 영향력은 적게 받은 편이었다.

칸쿤 및 주변 지역에는 아시엔다(hacienda: 라틴 아메리카 대농원)와 란초(rancho: 소규모 농장)가 남아 있어 식민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시엔다와 란초에서는 대부분 가축 사육과 설탕 생산을 하였고, 농부들이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19세기 에네켄(henequén) 산업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유카탄 반도의 주요 도시는 메리다(Mérida)와 바야돌리드(Valladolid) 정도였다. 19세기에는 아시엔다가 에네켄 플랜테이션으로 바뀌어 전 세계 노끈의 90%를 생산하였다. 에네켄 생산은 20세기 들어서도 계속되었으며 많은 마야 인들이 고용되어 있었으나, 인도에서 에네켄이 생산되고 합성 섬유가 개발되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칸쿤이라는 지명이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경이다. 1970년 칸쿤의 관광 개발 사업이 시작될 당시 칸쿤의 대부분 지역에는 사람이 거의 거주하지 않았고, 작은 어촌이던 푸에르토후아레스(Puerto Juárez) 지역에만 200명이 채 안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 대부분의 칸쿤 주민은 유카탄 반도를 비롯한 멕시코 전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2000년 칸쿤의 인구는 약 40만 명이었으며, 2010년에는 60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칸쿤이 개발되기 이전에 킨타나로오(Quintana Roo) 주의 인구는 1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였으나, 개발과 함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2000년에 80여 만 명을 넘어섰으며, 2010년에는 130여 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킨타나로오 주는 인구 밀도가 낮고 마야계 원주민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연관목차

360/1205
3.13.2 칸쿤의 사회 지금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