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크루스의 주요 해양 관문

베라크루스의 주요 해양 관문

가. 산후안데울루아 요새

산후안데울루아 요새(el Fuerte de San Juan de Ulúa)는 같은 이름을 가진 섬에 위치하고 있다. 베라크루스를 대표하는 산후안데울루아 섬은 가예가(Gallega) 산호초의 일부로, 2.5㎞에 이르는 해안선을 갖고 있다. 산호초가 넓고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여서 방어 면에서 매우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에스파냐 정복 이전 시기에는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 신의 성지로 여겨졌다. 산후안데울루아는 에스파냐 인들이 아스테카(Azteca) 왕국을 정복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며, 1821년 멕시코 독립 전쟁에서 패한 이후에도 에스파냐가 마지막까지 점거하던 곳이기도 하다. 식민 초기에 베라크루스에 들어오는 배들이 산후안데울루아에 정박하여 짐을 푼 후 세관을 거치지 않고 내륙으로 들여오자, 세관 수입을 늘리기 위해 이곳에도 세관을 설치하였다.

산후안데울루아 요새는 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베라크루스를 공격하는 해적 및 사나포선(私拿捕船: 다른 나라의 선박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민간 소유의 무장 선박)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1582년에 설치되었다. 유럽 열강의 공격에 대비하여 1635년부터 대규모의 요새 확장 공사를 시작하여 1707년에 마무리하였다.

산후안데울루아 요새는 1825년에 멕시코에 이양되었고, 이후 1838년 제1차 프랑스-멕시코 전쟁(과자전쟁)에서는 프랑스, 1846~1848년의 멕시코-미국 전쟁에서는 미국 군대의 공격과 점거가 이루어졌다.

이후 요새는 군사 감옥으로 바뀌었고, 1984년에 멕시코 국립인류역사연구소(Instituto Nacional de Antroplogía e Historia, INAH)가 박물관으로 지정하여 일반에 공개하였다.

나. 에로이카 해군사관학교

에로이카 해군사관학교(Heroica Escuela Naval Militar)는 1898년에 멕시코의 해군 장군인 호세 마리아 데 베가(José María de Vega)가 세웠다. 당시 멕시코 해군은 자체적으로 장교 및 선원 교육을 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교육 인력이나 선원을 데려와야 하였다. 그 이전에도 해군 관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기관을 설립하였으나 실패한 멕시코는 당시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íaz)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서부 유럽을 본보기로 해군 인력 및 상업용 해사(海事) 인력을 양성하는 해군학교를 설립하였다.

이곳은 1952년에 해군사관학교가 베라크루스 주의 안톤 리사도(Antón Lizardo)로 이전하기 전까지 멕시코 해군 교육의 요람이자, 1914년 미군의 침략 당시 주요 전장이었다. 해군사관학교가 옮겨진 후 건물은 해군 병원으로 활용되었다가 1997년부터는 해군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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