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의 역사

레온의 역사

가. 식민 이전과 식민 시기

에스파냐 식민 시기 이전의 레온 지역은 원래 추피쿠아로(Chupícuaro)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 문화는 멕시코 중앙 지역의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과 톨테카(Tolteca)의 영향을 받았다. 13세기에 산루이스포토시(San Luis Potosí) 지역에서 이주해 온 치치메카(Chichimeca) 족이 이 지역에 합류하였다.

1530년 에스파냐 인인 누뇨 벨트란 데 구스만(Nuño Beltrán de Guzmán)이 타라스코(Tarasco) 족과 합세하여 이 지역에 도착한 후, 이름을 ‘누에스트라세뇨라(Nuestra Señora)’라고 붙였다. 이후 15세기 중엽 에스파냐 인인 로드리고 데 바스케스(Rodrigo de Vázquez)와 후안 데 하소(Juan de Jasso)가 이 지역에 농장을 세우면서 에스파냐 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유럽의 농업과 목축업이 도입되었다. 그러한 중에도 치치메카 족의 위협은 끊이지 않았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에스파냐 인들이 지속적으로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ña) 부왕(副王)에게 안전 방비를 요청하였다. 1575년 당시 부왕인 마르틴 엔리케스 데 알만사(Martín Enríquez de Almanza)가 이곳에 도시 건설을 명령하였고, ‘레온(León)’이라고 이름 붙였다.

1576년 후안 바우티스트 데 오로스코(Juan Bautist de Orozco)가 레온의 첫 시가지를 건설하였다. 1580년 레온은 배후의 농촌 및 마을에 대한 행정 관할권을 부여받은 ‘알카디아 마요르(Alcadía Mayor)’의 지위를 얻었다. 레온의 행정 관할권은 코만하(Comanja) 산에서 레르마(Lerma) 강까지 이르렀다. 이후 과나후아토 지역의 행정과 교육 및 사회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1582년 신부인 에스피노(Espino)가 최초의 병원인 산코스메와 산다미안(San Cosme y San Damián)을 세웠다. 1731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도착하여 산타에스쿠엘라데크리스토 성당(Templo de la Santa Escuela de Cristo)을 세웠다. 이후 ‘빛의 성녀(Virgen de la Luz)’를 레온 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셨다.

1740년 당시 아메리카 지역에서 유일한 여학교였던 베아테리오데라스비르헤네스우르술리나스(Beaterio de las Virgenes Ursulinas)가 문을 열었으며, 19세기까지 로스앙헬레스 성당(Templo de los Ángeles) 옆에 있었다. 1840년에 신부인 이그나시오 아과도(Ignacio Aguado)가 산프란시스코데살레스 대학교(College de San Francisco de Sales)를, 1844년에는 라마드레산티시마 대학교(College de la Madre Santísima)를 세웠다.

나. 독립 이후 현재까지

19세기 멕시코의 독립과 국내외의 정쟁으로 레온도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멕시코 독립의 아버지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Miguel Hidalgo y Costilla) 신부는 레온 시의 행정 관할권(Alcaldía Mayor) 내에 있던 산디에고코랄레호(San Diego Corralejo)에서 태어났지만, 레온은 1825년까지 이달고 신부의 독립 선언인 ‘돌로레스의 외침(Grito fe Dolores)’을 인정하지 않았다.

독립 전쟁 시기(1810~1821년)에 호세 라파엘 데 이리아르테(José Rafael de Iriarte)가 이끄는 독립군이 1810년 레온을 점령하였으나, 두 달 후 펠릭스 카예하(Felix Calleja) 휘하의 정부군이 탈환하였다. 레온은 멕시코 독립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정부군의 지휘 아래에 있었다. 1863〜1866년까지 프랑스 침략 기간 동안에는 프랑스의 지배 아래에 있었으며, 1864년 당시 황제였던 막시밀리아노 1세(Maximiliano Ⅰ)가 친히 레온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후 자유파와 보수파 간의 갈등이 지속되었고, 멕시코 혁명 전쟁(1910~1919년) 중 레온은 자유파와 보수파를 오가며 여러 차례 입장을 바꾸었다.

1946년에는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중앙 광장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었는데, 정부군이 발포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기리는 뜻에서 광장의 이름을 ‘순교자의 광장(Plaza de Martyrs)’이라고 하였다.

연관목차

312/1205
3. 멕시코
3.7.2 레온의 역사 지금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