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후아나의 역사

티후아나의 역사

티후아나 지역에는 에스파냐 식민 시기 이전부터 쿠미아이(Kumiai) 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티후아나라는 지명의 어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바다와 함께(junto al mar)’라는 원주민 어에서 왔다는 설과, 붉은색의 언덕이라는 뜻의 원주민 어인 ‘Tijuan’ 혹은 ‘Ticuan’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티후아나와 샌디에이고의 앞바다를 처음으로 탐험한 유럽 인은 1542년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Juan Rodríguez Cabrillo)였다. 티후아나가 속한 바하칼리포르니아(Baja California) 지역은 에스파냐의 식민 지배 기간 동안 에스파냐 왕정의 관심에서 벗어난 변방 지역이었다. 에스파냐의 부왕령인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ña)의 변경에 속했던 이 지역에 1769년 수도승인 프레이 후니페로 세라(Fray Junípero Serra)가 선교를 위한 마을(mission)을 세웠다. 1829년 당시 멕시코의 칼리포르니아 주의 주지사였던 호세 마리아 에첸디아(José Maria Echendía)가 산티아고 아르게요(Santiago Argüello)에게 이 일대를 하사하였으며, 당시 세워진 농장의 이름이 ‘란초 티아 후아나(Rancho Tía Juana)’였다.

텍사스의 분리 독립의 영향으로 미국-멕시코 전쟁(1846~1848년)이 일어났고, 전쟁에 패한 멕시코는 현재 미국의 중서부에 해당하는 광대한 땅을 미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1848년 미국과 멕시코 간의 국경선을 설정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Tratado de Guadalupe Hidalgo)으로 샌디에이고 항이 미국에 속하게 되자, 작은 마을이던 티후아나는 멕시코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국경 마을이 되었다. 이후 국경 도시로서 발달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걸맞은 새로운 경제와 정치 구조가 형성되었다. 1880년대부터 미국 관광객이 찾기 시작하였으며, 1889년에 도시로 승격되었다. 이후 티후아나의 약칭인 ‘T.J.’는 미국인들에게 ‘멕시코로의 관문’을 뜻하였다.

20세기 들어 티후아나는 급속한 발전을 하였는데, 20세기 전반기에는 주로 미국과 근접한 관광지로서 발전하였다. 미국의 금주령이 시행된 기간 동안 미국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도시로 발달하였다. 이후 미국-멕시코 국경 도시 중 가장 역동적인 도시이자 산업 도시로 변화하였지만, ‘방탕한 도시’라는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1960년대 이후 티후아나는 멕시코의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1960년 티후아나와 남쪽의 엔세네다(Ensenada) 사이에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1965년 마킬라도라(Maquiladora) 산업이 시작된 이래 경공업 중심의 마킬라도라 업체가 도시 전역에 걸쳐 발달하게 되었다. 1970년에는 아벨라르도로드리게스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Abelardo L. Rodriguez)이 건설되었다. 1994년 멕시코 제도혁명당(PRI)의 대통령 후보였던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무리에타(Luis Donaldo Colosio Murrieta)가 선거 운동 도중 티후아나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이후 1994년 멕시코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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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멕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