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아이아의 역사

우수아이아의 역사

우수아이아에는 야마나 족(Yámana)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수렵, 어로, 채집 등의 활동을 하며 살아왔으며, 이들이 거주해 온 역사는 기원전 수천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존재는 16세기 마젤란에 의해 밝혀졌다고는 하지만,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에도 유럽 인 들의 침공이나 침략을 받지 않은 채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우수아이아의 위치가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에 있는 티에라델푸에고 섬 안에서도 가장 남쪽 끝인 데다 위로는 마르티알(Martial) 산맥으로 가로막히기까지 한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수아이아에 유럽 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해 오고 도시로 개발된 시기는 19세기 중엽 이후였다. 찰스 다윈이 탑승한 영국 탐사선 비글호가 비글(Beagle) 해협을 통과한 사건을 계기로 우수아이아의 존재가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 영국인 선교사들이 티에라델푸에고 원주민에게 선교를 하기 위하여 이곳에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부터 ‘우수아이아’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야마나 족이 부르던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1881년에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 조약이 체결되고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서부는 칠레령으로, 동부는 아르헨티나령으로 귀속되는 과정에서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령이 되었다. 이 무렵 우수아이아 일대에서 골드러시(gold rush)가 일어나면서 아르헨티나 인의 이주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노리던 금광은 정작 발견되지 않았고, 이주민들은 대신 어업이나 목양(牧羊)에 종사하였다. 한편, 유럽 인의 이주는 야마나 족에게는 비극적인 파멸을 불러왔다. 유럽 인과의 마찰, 그리고 이들이 가져온 전염병 등으로 인해 야마나 족은 20세기 초에 절멸했고, 1970년대에 접어들어 야마나 족 최후의 생존자마저 숨을 거둠으로써 이들은 지구 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관련이미지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포토갤러리

연관목차

257/1205
3. 멕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