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도바의 역사

코르도바의 역사

페루 부왕(副王)의 명을 받아 헤르니모 루이스 데카브레라(Jernimo Luis de Cabrera, 1520~1574)가 1573년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는 에스파냐의 지명을 따서 ‘코르도바데라누에바안달루시아(Córdoba de la Nueva Andalucía)’라고 명명하였고, 이는 오늘날 도시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내륙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건설 초기부터 번영해 왔으며, 17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일대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부상했다. 1776년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Virreinato del Rio de la Plata, 라플라타 부왕령이라고도 함)이 설치된 후에는 일시적으로 경기가 침체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왕령 내에서 중요한 도시라는 위치를 회복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독립 과정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대립각을 형성하였다. 18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주도한 아르헨티나의 독립 운동 당시에 영국군으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지켜낸 영웅이자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의 부왕이기도 했던 산티아고 데 리니에르스(Santiago de Liniers, 1753~1810년)가 보수파를 이끌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항하였다. 산티아고 데 리니에르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패배하여 처형당했지만, 코르도바는 1860년대에 접어들 때까지 아르헨티나 중앙 정부에 대한 저항과 대립을 이어나갔다.

코르도바는 아르헨티나 독립 이후에도 경제와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도시로 자리매김해 왔다. 교통의 요지인 이곳에 19세기 영국 자본에 의해 철도가 부설되고, 팜파스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 운송의 결절 역할을 하면서 도시가 크게 성장하였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1866년에는 프리메로 강에 산로케(San Roque) 댐이 건설되어 코르도바에 식수와 산업용수, 수력 발전을 통한 전기 등을 공급하면서 철도와 더불어 코르도바 산업 발전에 기여하였다.

팜파스의 철도망 확장 과정(1870~1900년)

팜파스의 철도망 확장 과정(1870~1900년) ⓒ 푸른길

20세기 이래 코르도바는 항공 교통과 육상 교통의 중심지인 동시에, 자동차와 항공 산업 및 첨단 기술이 발달한 산업과 기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코르도바에서는 르노, 피아트 등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의 자동차들이 생산되고 있으며, 1926년 문을 연 코르도바 군용기 생산 공장(Area de Material Cordoba)에서는 록히드마틴 등의 첨단 항공기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항공 산업은 항공기 엔진을 자체 제작하고 자국산 제트 전투기 개발을 주도하는 등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던 전성기인 20세기 초엽이나 중엽에 비하면 다소 퇴보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한 항공 산업과 기술은 여전히 아르헨티나의 기간산업이자 핵심 기술로 중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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