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투스의 역사

산투스의 역사

16세기 초에 신대륙과 브라질을 탐험했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그의 책 『신대륙(Mundus Novus)』에 이미 상비센치 섬에 대해 기록하였지만, 본격적인 유럽인의 정착과 도시 건설은 1546년 포르투갈의 귀족인 브라스 쿠바스(Brás Cubas)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곳에 브라질 내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항만 시설과 함께 성당과 주거지, 그리고 병원을 건설하였다. 이곳에 지어진 병원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건설된 것이다.

16세기 후반에 산투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 개척과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이 가톨릭교를 전도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차츰 성장하였지만, 영국의 토머스 캐번디시(Thomas Cavendish)가 이끄는 사나포선(私拿捕船: 민간 소유이지만 정부로부터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배)과 해적들에게서 몇 차례의 약탈과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산투스와 상파울루를 연결하는 도로가 건설되고, 항만과 도시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짐에 따라, 포르투갈과 브라질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19세기 들어, 브라질에서 커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산투스의 번영에 밑바탕이 되었다. 1867년에 산투스와 내륙의 커피 농장과 산업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산투스 항(porto de santos)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커피를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889년에 브라질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일본인과 이탈리아 인 등의 이민자들이 도시로 유입되어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브라질의 관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산투스 일대에서 전염병이 유행하고, 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많은 상선들이 기항을 기피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세기 초 브라질 정부는 산투스 항만 시설의 근대화에 많은 투자를 하였고, 이것이 현재 산투스 항을 브라질 최대 무역항으로 변화시킨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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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르헨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