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우의 역사

나타우의 역사

나타우와 그 일대는 포치구아르(Potiguar) 부족이 살던 곳이다. 나타우에서 북쪽 인근의 상호케(São Roque) 곶은 브라질의 해안 중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1501년 유럽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이 지역에 유럽 인들이 정착하지는 않았다. 이곳에 처음 거점을 마련한 유럽 인은 프랑스의 해적들이었다. 1598년에 포르투갈령 브라질의 총독이었던 프란시스쿠 지 소자(Francisco de Sousa)가 해적의 추방을 명령하여, 알부케르크 마라냥(Albuquerque Maranhão)이 ‘성하(聖下)의 요새(Fortaleza dos Reis Magos)’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요새의 배후 도시로 나타우가 건설되었다. 나타우와 그 주변 지역은 한때(1633~1654) 네덜란드에 점령되기도 하였다.

해안에 있는 나타우의 토양은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하지 않아서,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이 지역의 경제는 해안 평야보다는 건조한 내륙에서 행해지는 목축이 중심이었다. 생산된 쇠고기는 소금으로 간을 쳐서 말린 육포로 가공되어, 오랫동안 저장하거나 외지로 반출되었다. 나타우를 포함한 브라질 동북 지방의 전통 음식인 ‘카르니지소우(carne de sol: 태양의 고기)’는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나타우의 유럽 및 아프리카와 가까운 전략적 위치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연합군의 공군 기지가 나타우 교외의 파르나미링(Parnamirim)에 건설되었다. 이 기지는 북아프리카에서 전투를 벌이는 연합군을 지원하여 수천 명의 미군이 이 기지에 주둔하였고, 그들의 존재는 도시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파르나미링의 공항은 지금의 아우구스투세베루 국제공항(Aeroporto Internacional Augusto Severo)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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