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알레그리의 역사

포르투알레그리의 역사

몇몇 인디언 부족이 살고 있던 이 지역에 유럽인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부터였다. 1748년부터 1756년까지 포르투갈 국왕은 주변의 에스파냐 침입자들로부터 남부 브라질을 지키기 위해 아조레스(Azores)에 살던 포르투갈 인 2,300명을 이 지역으로 보냈다. 아조레스는 대서양에 있는 제도(諸島)로, 지금도 포르투갈의 영토이다. 대부분 부부로 구성된 이 식민지 개척자들은 포르투도스카사이스(Porto dos Casais, 부부의 항구) 시를 건설했으며, 이 도시가 바로 오늘날의 포르투알레그리이다. 1772년에는 천주교 포교 단위로 포르투도스카사이스(São Franscisco do porto dos casais) 교구가 형성되었고, 몇 년 후에는 주교가 교구 이름을 포르투알레그리(Nossa Senhora Madre de Deus do Porto Alegre)로 바꾸었다.

이후 포르투알레그리는 지방 정부의 소재지가 되었고, 브라질이 독립하던 해인 1822년 도시의 인구는 12,000명으로 늘어났다. 항구의 주요 시설들은 19세기 중엽에 대거 건설되었고, 19세기 말 도시의 인구는 73,000명이 되었다.

포르투알레그리는 1963년 유니버시아드 경기 대회를 유치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또한 비정부 국제조직(NGO)들이 주관하는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이 개최된 곳으로도 이름나 있다. 이 포럼의 첫 대회인 2001년 포럼을 비롯하여 2002년, 2003년, 2005년, 2012년의 대회가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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