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우스의 역사

마나우스의 역사

가. 식민 초기

1669년 포르투갈 인들은 수리남(Surinam)에 본부를 둔 네덜란드 인들에 대항하여 이 지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마나우스에 상조제두히우네그루 요새(Forte de São José do Rio Negro)를 만들었다. 이것이 마나우스 식민지 역사의 시작이다. 요새는 바위와 진흙으로 지어졌고, 성벽에 4문의 대포가 설치되었다. 요새 주변에 거주하던 많은 혼혈인들이 요새의 건설을 도왔으며, 건설 후 114년 이상 요새의 기능을 유지하였다.

1755년 3월 3일 국왕의 칙령에 따라 상조제두히우네그루 식민 행정구(capitania)가 건설되었고, 마나우스에서 네그루 강을 따라 상류로 400여㎞ 올라간 지점에 위치한 도시, 즉 현재의 바르셀루스(Barcelos)에 본부를 두었다. 1791년 통치자 로부 달마다(Lobo D'Almada)는 에스파냐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네그루 강과 아마존 강이 합류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본거지를 옮겼다. 새 본부는 1832년 11월 13일 마나우스(Manaus)라는 이름의 읍으로 승격되었는데, 마나우스는 원주민 부족인 마나오스(Manaós)를 기리는 이름이었다. 1848년 10월 24일 이곳은 ‘검은 강 가장자리의 도시’라는 뜻의 시다지다바라두히우네그루(Cidade da Barra do Rio Negro) 시로 승격되었다. 1856년 9월 4일 통치자 에르쿨라누 페레이라 페나(Herculano Ferreira Pena)가 지금의 마나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 원주민의 반란

브라질 북부 지방에서는 1835년 흑인, 인디언, 메스티소(mestizo) 들이 정치 엘리트에 맞서 정권을 잡은 카바나젱(Cabanagem) 반란이 일어났다. 카바나젱이란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던 오두막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백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 반란에 가담하였으며, 아마존 강 하구 부근의 벨렝(Belém) 시를 공격하고 새 정부를 세워 대통령을 뽑았다. 그러나 반군 정부는 내분으로 오래가지 못하여, 이듬해인 1836년에는 브라질 정부군에 투항하였고 나머지 반군은 아마존 밀림 속으로 흩어졌다.

정부는 유화책을 써서 사면령을 내린 끝에 1840년에 반란이 종식되었다. 이 반란으로 브라질 북부 지방의 인구는 크게 줄어들었으며, 유화 정책의 결과 아마조나스 주가 탄생하게 되었다.

다. 고무 붐

고무 붐(Ciclo de borracha)은 브라질에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던 고무 산업의 호황, 더 나아가 경제 호황을 가리킨다. 천연고무는 19세기에 들어 그 활용법이 개발되고 산업 혁명에 힘입어 유럽에서 수요가 폭증하면서, 원산지였던 아마존 분지는 고무나무의 독점에 힘입어 번영과 변화를 누리게 되었다. 브라질과 볼리비아에서는 아마존 유역으로 철도 노선을 연장하는 등 국가의 실질적 영토가 아마존 일대까지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민이 급증하였다. 브라질에서는 마나우스, 포르투벨류(Porto Velho), 벨렝 등의 도시가 급성장하고, 페루에서는 이퀴토스(Iquitos)와 같은 새로운 취락이 아마존 강 연안에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마나우스는 아마존 지역의 19세기 고무 붐의 중심지로, 한때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사치는 거대 오페라 하우스, 거대 돔과 금박 난간, 유럽산 대리석과 유리, 크리스털로 점차 확대되었다. 오페라 하우스의 이름은 아마조나스 극장(Teatro Amazonas)으로, 현재까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마조나스 극장은 보수를 거쳐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의 영화 ‘피츠카랄도(Fitzcarraldo, 1982)’의 촬영에 사용되었으며, 90년간의 휴식기를 마치고 다시 오페라 공연을 열고 있다.

아마존의 고무 붐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1876년에 위컴(Henry Wickham)이 고무나무 씨앗을 밀반출하여 영국으로 가져갔고, 이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열대 지방에서 이식에 성공하게 된다. 더구나 고무나무는 플랜테이션이라는 대규모 농장에서 체계적으로 재배됨으로써, 브라질의 천연고무는 그 생산성과 가격 면에서 도저히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였고, 영국은 세계의 천연고무 시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브라질이 고무 산업의 독점력을 잃게 되자 마나우스는 곤궁해졌다. 고무 붐으로 마나우스에는 유럽 도시들보다 먼저 전기가 들어왔었지만, 고무 산업이 쇠퇴하자 그 비용을 부담하지 못해 한동안 전기를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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