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렝의 역사

벨렝의 역사

포르투갈 어로 벨렝은 아기예수가 태어났던 ‘베들레헴’을 가리키는 말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이 도시를 ‘파라 주의 벨렝(Belém do Pará)’이라고 부르는데, 브라질에 벨렝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많이 있어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벨렝은 브라질 대서양 연안의 다른 곳에 비해 다소 늦은 1616년에야 포르투갈 식민지의 하항(河港)이 된다. 16세기 후반에 북부 브라질의 대서양 연안 지방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포르투갈 등 여러 유럽 세력들의 각축장이었다. 이에 브라질 총독은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려고 1615년에 바이아 식민 행정구(Capitania da Baía de Todos os Santos)의 카스텔루(Francisco Calderia Castelo Branco) 장군에게 아마존 강 하구 일대를 조사할 것을 명하게 된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 ⓒ 푸른길

카스텔루가 이끈 탐사대는 1616년에 지금의 벨렝이 입지한 과자라(Guajará) 만에 기착하였고, 그곳을 아마존 강의 어귀로 착각하여 요새(Forte do Castelo)를 세우고 주변 일대를 식민지로 삼게 되었다. 이 식민지의 이름은 몇 차례 바뀐 다음 산타마리아지벨렝(Santa Maria de Belém)으로 정해졌으며, 1655년에 벨렝 시로 승격하였고, 1772년에 파라 주가 마라냥(Maranhão) 주에서 분리될 때 주도가 되었다.

벨렝에게 19세기 전반기는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1835년에 카바나젱(Cabanagem)이라 부르는 반란이 일어나, 흑인, 원주민 및 혼혈인들이 백인 엘리트에 맞서 벨렝을 점령하고 새 정부를 세워 대통령을 뽑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반군 정부는 내분으로 오래가지 못하여, 이듬해인 1836년에는 브라질 정부군에 투항하였고 나머지 반군은 아마존 밀림 속으로 흩어졌다. 정부는 유화책을 써서 사면령을 내린 끝에 1840년에는 반란이 종식되었다. 카바나젱으로 인해 벨렝을 포함한 브라질 북부지방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으며, 경제도 타격을 받았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는 아마존 천연고무 산업의 발달로 이 도시는 부흥하였으며, 고무 산업이 쇠퇴한 이후에도 아마존 유역의 관문 기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연관목차

102/1205
1.11.2 벨렝의 역사 지금 읽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