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델플라타의 역사

마르델플라타의 역사

마르델플라타는 1581년에 후안 데 가라이(Juan de Garay)가 지휘한 에스파냐 탐험대에 의해 유럽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18세기 초까지 본격적인 취락이 발달하지 않았다. 1746년에 와서야 예수회 선교사들이 마을을 세워 한때 인구가 1,200명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원주민의 습격을 받아 1751년에는 버려지고 말았다. 이곳은 19세기 초인 1825년 아르헨티나가 독립한 뒤에도 한동안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였다.

마르델플라타의 배후 지역, 즉 아르헨티나 동북부 일대의 초원 지대를 가리켜 팜파스(Pampas)라고 부른다. 팜파스는 농업 지대로서 큰 잠재력을 가졌지만, 19세기 중엽까지 그 개발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부근에 국한되었다. 그 이유는 팜파스에서 생산되는 쇠고기를 주요 시장인 유럽까지 신선하게 실어 나를 수 있는 기술과 교통이 미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후엽에 이르러 일련의 기술 혁신이 팜파스의 변모를 촉진하게 되었다. 우수한 품종의 소와 양이 도입되면서, 냉장 기술이 개발되고 조선 기술이 발달하여 신선한 냉장육이 빠르게 유럽 시장에 공급될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를 정점으로 방사상(放射狀)의 철도망이 팜파스 전역으로 넓혀져 사람의 왕래와 화물의 수송이 편리해졌고, 관개 시설이 보급되어 팜파스에서 목축 이외에도 밀, 콩, 해바라기, 유채 등의 재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혁신과 개발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유럽에서 대거 이민이 이루어졌다.

팜파스의 철도망 확장 과정(1870~1900년)

팜파스의 철도망 확장 과정(1870~1900년) ⓒ 푸른길

마르델플라타의 성장도 팜파스의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불러온 직접적인 결과이다. 1856년포르투갈의 사업가인 호세 코엘류 메이렐리스(José Coelho de Meyrelles)가 아르헨티나 팜파스에서 산출되는 쇠고기를 육포로 가공하기 위한 공장을 세웠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이후 1873년에 아르헨티나의 실업가인 파트리시오 페랄타 라모스(Patricio Peralta Ramos)가 이 일대를 사들여 개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라모스는 자신이 세운 도시를 ‘라플라타(La Plata: 아르헨티나의 옛 이름)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마르델플라타(Mar del Plata)’로 이름 지었다.

마르델플라타는 1874년 2월 10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도시로 공식 편입되었고, 이날은 도시의 설립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연관목차

242/1205
2. 아르헨티나
3. 멕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