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레이의 사회

몬테레이의 사회

미국과의 국경선이 확정되기 이전인 1827년 몬테레이의 인구는 12,0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1880년에도 3만 명 미만이었으나, 1888년 철도가 개설되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여 1910년에는 98,000여 명으로, 인구가 많은 편에 속하는 도시가 되었다. 19세기에 조성된 몬테레이의 중심 시가지는 에스파냐의 도시 건축 법령을 따른 멕시코의 여타 도시보다는 미국의 도시 가로망과 유사하다. 이는 당시 텍사스 주의 샌안토니오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활동한 영국 출신의 건축가인 앨프리드 자일스(Alfred Giles)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20세기 전반에 꾸준한 인구 증가세를 나타낸 몬테레이는 1930년에 13만 명이던 인구가 1940년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몬테레이가 산업 부문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며 인구 성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수입 대체 산업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부터였다. 1965년에는 95만 명으로 1940년 인구의 4배 이상으로 증가하였고, 몬테레이 시(municipio)에 한정되던 시가지도 산타카타리나(Santa Catarina), 가르사가르시아(Garza Garcia), 산니콜라스(San Nicolas), 과달루페(Guadalupe) 등으로 확대되었다. 1970년에 이곳의 인구는 118만 명 가까이 되었다. 2000년 약 330만여 명, 2010년 410만여 명으로 10년 사이에 약 80만 명의 인구가 증가하였으며, 멕시코시티와 과달라하라에 이어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광역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몬테레이 시(municipio)에 주요 시가지가 입지하고 있으며, 시가지의 남동쪽에 위치한 아옌데(Allende), 몬테모렐로스(Montemorelos), 리나레스(Linares) 등이 몬테레이 광역 도시권을 이루고 있다.

스스로를 ‘북부의 술탄(Sultana de Norte)’이라 일컫는 몬테레이는 멕시코 북부의 상업 중심지이자 공업 중심지이다. 몬테레이는 멕시코 도시 중 가장 부유한 도시이며, 가장 발전한 도시이자 현대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명문 사립 대학인 몬테레이 공과대학(Instituto Tecnológico y de Estudios Superiores de Monterrey)을 비롯하여 유수의 대학과 교육 시설들이 있어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의 주요 기업들의 본사와 지사뿐만 아니라 주요 다국적 기업들도 이곳에 입지해 있다. 1975년 이후 멕시코에서 증권 거래 허가를 받은 사람 중 3분의 2 이상이 몬테레이를 중심으로 누에보레온 주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몬테레이는 멕시코 북부 내륙 지역의 농업, 목축업, 가금업 등의 주요 소비 시장이자 상품 공급처이고, 미국과의 국경과 2시간 거리에 근접하여 있어, 사회 및 경제적인 면에서 미국과의 연계가 강한 도시이다. 몬테레이는 도시의 구시가지를 비롯한 도시 경관 전반에서 미국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미국의 텍사스 지역으로부터 관광 및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친기업적인 성향이 강한 정당인 국민행동당(Partido Acción Nacional, PAN)이 전통적으로 우세한 지역이며, 대규모의 군사 기지가 들어서 있다. 또한 몬테레이는 도시에서 생산한 하수를 완전히 처리하여 산타카타리나 강으로 흘려보내고 있는데, 하수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도시는 멕시코에서 몬테레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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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멕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