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라하라의 역사

과달라하라의 역사

가. 식민 이전과 식민 시기

에스파냐 인들의 통치가 시작되기 이전에 과달라하라 지역은 멕시코 중앙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 지역 북쪽 변경에 속하였다. 과달라하라 지역은 나와(Nahua) 족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며, 타라스칸(Tarascan)과 톨테카(Tolteca), 아스테카(Azteca)의 중간에 위치하여 정치적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과달라하라는 1532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현재 위치에 시가지가 형성되기 이전에 세 곳에서 세워졌다가 옮기기를 반복하였다.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이 호전적이어서 에스파냐 인들의 정착지 건설에 어려움이 많았고, 정착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식수원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1533년 부왕령(副王領)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ña)의 하부 지역인 누에바갈리시아(Nueva Galicia)의 통치자로 임명된 누뇨 데 구스만(Nuño de Guzmán)이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학정을 펼치자, 1541년 이 지역에 거주하던 칵스칸(Caxcan), 포르테쿠엑스(Portecuex), 사카테코(Zacateco) 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누에바에스파냐의 부왕이었던 안토니오 데 멘도사(Antonio de Mendoza)까지 나서서 노예로 잡힌 원주민들을 풀어 주고 사면령을 내렸다. 이후 다시 자리를 옮겨, 1542년에 현재의 자리인 아테마학 계곡(Valle de Atemajac)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 후 과달라하라는 지속적으로 멕시코 서부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에스파냐의 식민 지배 기간에 멕시코 서부의 문화, 경제, 정치, 행정 면에서 가장 주요한 도시였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 ⓒ 푸른길

식민 시기에 과달라하라의 행정력이 미친 범위는 멕시코 서부 대부분으로, 서쪽으로는 태평양 해안, 북쪽으로는 캘리포니아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이 시기 과달라하라의 행정 구역에 속한 인구는 약 60만 명으로, 멕시코시티와 푸에블라 다음으로 많았다. 1560년에 누에바갈리시아의 행정 중심지를 콤포스텔라(Compostela)에서 과달라하라로 이전하여 1810년 멕시코 독립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주교의 관할권도 과달라하라로 이전되어 1561년에 대성당 공사가 시작되었다. 1670년에 아우구스티누스회와 도미니크 수도회가 도착하였고, 이후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18세기 과달라하라는 경제적 번영을 이루며 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추었다. 당시의 경제는 농업에 기반을 두고 섬유와 제화, 식료품 생산업 등이 산업의 중심을 이루었다.

나. 독립 이후

19세기 과달라하라는 멕시코를 휩쓴 전쟁과 혁명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1810년 멕시코의 독립 전쟁 당시 멕시코 독립의 영웅인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 신부는 멕시코시티를 공격하는 대신에 과달라하라로 퇴각하였다. 1811년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8만여 명의 군대와 95기의 대포를 갖춘 이달고의 군대는 6,000여 명의 정부군에 패하였고, 이달고는 아과스칼리엔테스(Aguascalientes)로 도주하였다. 멕시코의 독립 이후인 1823년에 할리스코(Jalisco) 주가 세워졌으며, 과달라하라는 주도가 되었다. 개혁 전쟁(Guerra de Reforma)이라고도 불리는 내전 중에는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 대통령이 1856년에 정부를 과달라하라에 잠시 두기도 하였다. 1864년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략하였을 때 과달라하라는 프랑스군이 점령하였고, 1866년에야 멕시코군이 다시 탈환하였다.

19세기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과달라하라는 경제·기술·사회적 발전을 이루었다. 독립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소유한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발달하였으며, 철로가 건설되어 태평양 및 미국과 연결되었다. 이에 따라 무역이 성하였으며, 할리스코 주의 농촌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과달라하라를 거쳐 미국을 비롯한 해외로 수송되었다. 이때부터 농장 문화는 할리스코 주와 과달라하라 시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1884〜1890년까지 전기 및 철도 교통의 발달이 이루어졌으며, 천문대가 건설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이후 급속히 발전하여, 1947년에는 첫 번째 공업 단지가 세워졌다. 1964년에 도시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멕시코 제2의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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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멕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