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의 역사

멕시코시티의 역사

가. 에스파냐의 정복 이전

멕시코시티의 기원은 멕시카(Mexica) 제국의 왕도인 테노치티틀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멕시코의 건국 전설에 의하면, 톨테카 족(Tolteca)을 계승한 고대 메소아메리카 세계의 마지막 왕국 세력인 아스테카 족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북아메리카의 사막에서 애리조나, 치와와를 거쳐 중앙 지역에 이르렀다. 그들의 이동은 용맹스런 전쟁의 신인 우이칠로포치틀리(Huitzilopochtli, 마법사 벌새라는 의미)와 신관인 테노치(Tenoch)의 신탁에 따른 것이었다. 아즈텍 족은 1325년 호수의 소택지(沼澤地)와 섬들 위에 테노치티틀란을 세웠다.

현재 멕시코시티의 중심지인 콰우테모크(Cuauhtémoc) 지구에 해당된다. 아즈텍 인들은 이 도시에 ‘달의 배꼽’이라는 뜻의 ‘메히코(Méjico)’라는 접두사를 덧붙였으며, 현재 멕시코 국명의 유래가 되었다. 이후 1521년 에스파냐 인들에게 정복당하기 이전까지 테노치티틀란은 목테수마(Moctezuma) 왕이 다스리는 아스테카 왕국의 수도였다.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문명권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문명권 ⓒ 푸른길

나. 식민 시기

1519년 쿠바에 주둔하던 에스파냐 관리인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órtes)가 침략할 당시 테노치티틀란의 인구는 30만 명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도시였다. 코르테스는 당시 테노치티틀란에 대해서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크고 화려한 도시라는 기록을 남겼다. 1521년에 코르테스 군대는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하였고, 테노치티틀란을 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세운 부왕령인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ña)의 수도로 삼았다. 1524년 새로운 수도의 이름을 ‘멕시코 테노치티틀란’이라 하였고, 1585년에 시우다드데멕시코(Ciudad de México), 즉 멕시코시티라 하였다. 이후 1821년 독립 이전까지 멕시코시티는 에스파냐 아메리카 식민지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 ⓒ 푸른길

에스파냐 인들은 아스테카 왕국의 수도 위에 격자형 가로망과 중앙 광장을 가진 에스파냐식 도시를 다시 세웠다. 식민 기간 동안에 멕시코시티는 경제적으로도 번영하였는데, 이는 멕시코시티와 인접한 사카테카스(Zacatecas) 지역에서 거대한 은광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멕시코시티는 태평양 연안의 항구 도시인 아카풀코(Acapulco)와 멕시코 만의 항구 도시인 베라크루스(Veracruz)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다. 에스파냐는 식민 기간 동안 필리핀 마닐라로부터 아카풀코, 멕시코시티, 베라크루스, 쿠바의 아바나를 잇는 무역로를 통해 교역하였다. 식민 기간 동안 부유했던 멕시코시티는 거대한 교회와 공공건물을 다수 건설하였으며, 도시의 엘리트 계층은 궁전처럼 화려한 주택을 지었다. 19세기 초 독일의 지리학자인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는 이때 멕시코시티의 모습을 보고 ‘궁전의 도시’라고 하였다.

에스파냐의 식민지 도시 계획

에스파냐의 식민지 도시 계획 ⓒ 푸른길

다. 독립 이후 현재까지

1824년에 멕시코 연합국의 수도로서 특수한 지위를 지니는 연방 연방 직할구(distrito federal)로 지정되었으며, 멕시코 주의 주도는 톨루카로 이전되었다. 멕시코의 근대화 시기라고 할 수 있는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 대통령의 재임 기간(1876~1880, 1884~1911) 동안 멕시코시티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디아스 대통령은 멕시코시티를 유럽의 도시와 어깨를 겨루는 도시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파리의 도시 계획을 모방하여 멕시코시티를 변모시켰다. 도시 외곽에 다수의 산업 지구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1910년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난 마데로(Francisco I. Madero)의 혁명으로 디아스 시기가 종료되었으며, 멕시코시티는 1919년까지 멕시코 혁명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멕시코시티는 지속적으로 주요한 도시이기는 하였지만 현재와 같은 인구 및 경제, 정치, 사회의 중심지로서 성장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혁명이 끝난 이후에도 인구는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멕시코의 으뜸 도시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1940년대 이후 멕시코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 과정에서 멕시코시티는 국가 발전의 핵으로 성장하였다.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 전략 기간 동안 멕시코시티는 멕시코 대부분의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수많은 기능을 흡인하여 그 중심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수도 이상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950년에 세워진 라틴 아메리카 타워(Mirador Torre Latino)는 멕시코의 경제적 성장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개최된 올림픽이었으며, 1969년에는 멕시코시티에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급작스런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사회적 갈등도 심화되어 민주화와 경제 성장의 균등한 분배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집회가 확산되었다. 이는 결국 1968년 틀라텔롤코(Tlatelolco) 발포 사건으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1985년에는 멕시코시티 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멕시코시티 중심 시가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멕시코 전체에서 멕시코시티의 산업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1982년 멕시코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1990년대 연이은 경제 위기,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의 발효 등을 겪으면서 약화되었으나, 외국 자본 및 다국적 기업의 본거지로서 금융 분야의 주요한 중심지의 위상은 강화되고 있다. 한편 경제 발전 과정에 뒤따른 인구의 급속한 증가, 도시 환경의 악화, 수자원의 부족, 계층 간 빈부 격차의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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