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키파의 사회

아레키파의 사회

가. 인구

2013년 기준 아레키파의 도시 인구는 852,807명(INEI)이다. 이 도시의 인구는 20세기 후반에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는데, 1961년에 16만 명 정도였던 인구는 1972년에 30만 명 정도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으며, 20여 년 뒤인 1993년에는 62만 명 정도로 증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아레키파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원인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물자 수입에 제약을 받으면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내수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산업화 정책이 추진된 점과, 1950년대 이후 지진과 가뭄으로 인해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대거 이주해 옴에 따라 이루어진 급격한 도시화 과정 등을 들 수 있다.

나. 민족과 언어

아레키파는 사방이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여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형적 요인 때문에, 식민 시기부터 에스파냐 인들이 혁명이나 토착민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특색이 지속되면서 토착민과 메스티소는 도시의 외곽으로 점점 밀려나게 되었고, 도시 중심부는 주변 지역과 달리 에스파냐 어와 가톨릭교로 대표되는 에스퍄나 인의 도시이자 이른바 ‘인종의 섬’을 이루게 되었다. 1796년에 최초로 실시된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당시 전체 인구 중에서 에스파냐 인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토착민과 메스티소가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페루의 다른 도시와는 상반되는 것으로, 페루의 독립 이후에도 에스파냐 인들이 세력을 유지하면서 수도 리마에 대항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아레키파의 공용어는 식민 시기에 사용된 에스파냐 어와 잉카 제국기와 20세기 후반에 사용된 케추아 어지만, 이 두 개의 언어는 서로 영향을 받아 원래의 표준어에 비해 많이 변형되었다.

다. 행정

아레키파는 페루 헌법재판소의 소재지로서, 1979년에 제정된 규약에 따라 페루의 사법 수도가 되었다. 이것은 페루의 독립 이후 수도인 리마와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던 아레키파의 위상을 반영한 것으로, 실제 페루의 독립 당시 수도의 지위를 놓고 리마와 아레키파가 서로 맞섰다. 결국 리마가 입법, 행정 수도의 역할을 가져가는 대신, 사법 수도의 지위는 아레키파가 가지게 되었으며, 헌법재판소 이외에도 사법 기능과 관련된 일부 정부 부처도 아레키파에 위치하고 있다.

아레키파 시(ciudad) 내부는 14개의 구(distrito)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레키파 주(departmento)는 8개의 지구(provincia)로 이루어져 있다.

라. 교육

아레키파는 주요 대학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어 페루에서 인구 대비 대학생 수가 많은 도시로 이름이 높다. 주요 대학으로는 산마르코스 국립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Mayor de San Marcos)에 이어 페루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인 산아구스틴 국립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de San Agustín)를 비롯하여, 산파블로 가톨릭 대학교(Universidad Católica San Pablo), 도시 최초의 사립 대학교인 산타마리아 가톨릭 대학교(Universidad Católica de Santa María) 등이 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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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페루
5. 콜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