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가른 뽕 할머니의 원력

바다를 가른 뽕 할머니의 원력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보은설화

• 주제 : 보은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전라도
• 참고문헌 : 지노의 사적

서기 148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500여년 전 이조 초기에 손동지(孫同知)라는 사람이 있었다.
제주도로 유배되어 가다가 풍파로 배가 파선되어 진도군 고도면 회동(回洞) 마을에 표류하게 되었다.
가까스로 젖먹던 힘까지를 다 내서 겨우 사지를 벗어나 올라 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 마을은 호랑이의 침범이 극심하여 마을 이름을 호동(虎洞)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그 후 손동지와 자손들은 그 오백여년 동안 그 곳에서 살았으나 날로 호랑이의 침해가 극심하여 살기가 어렵게 되어 뗏목을 타고 지금의 의신면(義新面) 모도(茅島)마을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황급히 떠나는 바람에 소란을 피우다가 그만『뽕』할머니란 늙은 할머니를 그대로 놓아두고 떠나게 되었다.
뽕할머니는 흩어진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서 매일같이 강가에 나와 용왕님과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다. 「부처님,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용왕님을 동원하여 강을 건너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축원하고 기도하자 그해 음력 3월초 꿈속에서 용왕님이 나타나서 말했다.
「당신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내가 용기를 내어 다리를 놓되 무지개 다리로 놓을테니 놓아지거든 지체하지 말고 곧 강을 건너십시오.」
꿈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밤잠도 설치고 일어나 바닷가로 나갔다.
샛별이 빛나는 새벽이 지나고 붉은 태양이 솟아 해가 중천을 넘어 섰을 때 바다에서「지잉-」하고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호동의 뿔치와 모도의 뿔치 사이에 무지개가 드리워지더니 큰 도로가 났다.
바다가 갈라지면서 모래 등성이가 나타난 것이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었다.
할머니는 어찌나 좋은지 두 손을 불끈 쥐고 바다를 건너갔다.
건너 마을 자손들이 보고 미친 듯이 뛰어나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다가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만 할머니는 기가 차서 죽고 말았다.
숨이 거두어지자 이제는 진짜 서기방광을 하였다.
하늘 끝까지 길이 트이고 하늘음악이 울려 퍼지더니 보살들의 찬란한 위용이 나타나면서 그를 도솔천으로 안내하였다.
회동마을 사람들은 그 보살을 미륵보살이라 믿고 장차 그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시게 되면 우리 할머니도 같이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매년 3월이면 거군적(擧郡的)으로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매년4월 20일경(양력)과 5월 20일 경이면 으례히 그 바닷길이 열리어 신비의 바닷길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로 인하여 진도군 진도읍 수역리 칠성사(七星寺) 정경식(鄭京植)스님은 국보 제22호 금산사 미륵존불과 같은 거대한 부처님을 조성하여 조국통일과 민족주체 의식을 확립코자 대대적인 불사(佛事)를 진행하고 있다.
진도는 영리하고 충직하여 유혹성을 갖지 않는 진도개만으로도 유명하거니와, 김·구기자·마늘 등의 다채로운 특산물이 넉넉하며 또 거기에 비자나무·후박나무 등의 상록수와 백조들이 날아들어 천연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용장리의 용장산성(龍莊山城), 남동리의 남도석성(南挑石城)은 쌍계사(双溪寺) 운림산방과 함께 지방문화재가 되어 있으며, 관내도의 국립해상공원 고군벽파의 충무공 전첩비 명량해협의 연륙대교는 주요 관광사적지로서 뽕할머니의 전설과 함께 백전불굴의 백의사(白衣史)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않는가. 입으로 기도하고 말로만 기적을 논하지 말고 스스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진도의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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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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