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룡화생이 생사를 자재하다

서룡화생이 생사를 자재하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자재설화

• 주제 : 자재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전라도
• 참고문헌 : 영험록

1918년 지리산 벽송암(碧松庵)화상이란 큰 스님이 계셨다.
그는 광산 김씨 사계선산 8대손으로 명문대가의 자제이었는데, 하루는 과거 공부를 하다가 종로 네거리를 나갔더니 사람들이 한 패 모여 왁자지껄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싹 다가가 보니 동강 잘린 상투 머리가 푸줏간의 소모가지처럼 매어져 대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이가 누구입니까?」
「모 참판 대감의 머리입니다.」
「어찌하여 저렇게 되어 있습니까?」
「4색당파에 몰려서 반대 당파의 누명을 쓰고 저런 죽음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은 무상하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교동 일대를 뒤 흔들던 참판 대감이, 오늘은 저렇듯 나뭇잎의 이슬처럼 동강 떨어져 증발되어 가고 있으니 과거에 급제하여 대감 참판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실로 세간의 명리가 욕됨은 저와 같구나.」
탄식하고 그는 부모도 몰래 도망쳐 경기도 안성군 청룡사(靑龍寺)에 이르러 영월장로를 스승으로 사미계를 받았다.
나이 19세, 생각하면 아까운 청춘이었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불도 수행에만 열중하였다.
불법을 닦고 익히기 수십 년, 불법의 참 뜻은 인과윤회를 벗어나 생사를 자재하는 데 있음을 깨닫고 지리산 벽송암으로 옮겨 불고생사하고 조사의 관문을 뚫었다.
1890년 경인(廣寅) 12월 27일, 스님은 문도들을 모아 놓고,
「오늘은 내가 갈 곳으로 가야겠다. 뜻이 있는 자는 마땅히 독경과 염불을 게을리 하지 말라.」
이 말씀을 듣고 손주 상좌 있다가,
「노스님 내일 모레가 섣달그믐이 아닙니까? 대중스님들이 떡과 진수성찬을 차려 과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초상이 나면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좀더 명을 늘이실 수없습니까?」
「그래, 나는 오늘이 꼭 떠나갈 날이라 그만 열반에 들려 하였더니 너의 말을 들으니 그럴 법도 하구나. 나이 78세 중노릇 하기 60년을 가까이 했는데 죽고 사는 것 하나 자재하지 못한다 해서야 되겠느냐? 그럼 어서 과세불공 준비나 잘들 해라.」
하고 스님은 평상시와 같이 선정에 들어계셨다.
그래 무사히 과세를 치르고 정월초이튿날,
「자, 그럼 가도 되겠지?」
하고 물었다.
또 손주 상좌가 말하였다.
「노스님 오늘은 안 됩니다. 내일이 초 3일이라 수 많은 신도가 불공을 오시는데 만일 노스님께서 돌아가시고 보면 모두 부정스럽다고 불공을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며칠 더 묵지, 세상에 일도 많구나.」
하시고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 4일에 이르러서,
「노스님 고맙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연기를 해 주셔서 이제 사중(寺中) 일은 원만히 마쳤사오니 스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럼 너희들 다 모여라.」
대중이 모이자, 스님은 법상에 앉아,
「너희들 잘 들어라. 중이 불도를 닦을 때 생사를 해탈하려면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는 생사 없는 이치를 알아야 하고 (지무생사.知無生死),
둘째는. 생사 없는 것을 증득하는것이고 (증무생사.證無生死).
셋째는 생사 없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용무생사.用無生死).
일지반해(-知半解)만 투득하고 이에 만족하면 생사는 자재할 수 없는 것이니 내가 생사를 자재함은 곧 이를 알고 중하고 쓰는 까닭이다. 자, 그럼―」
하고 스님은 앉은 그대로 말이 없었다.
참으로 뛰어난 스승이요, 무비(無比)의 해탈자였다.

<靈驗錄>

연관목차

839/1978
보은설화
견성설화
자재설화
사리설화
포교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