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거사 가족 뜻따라 가다

방거사 가족 뜻따라 가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자재설화

• 주제 : 자재
• 국가 : 중국
• 참고문헌 : 전등록

거사 하면 인도의 유마거사, 한국의 부설거사 하듯 중국에서는 방거사를 친다.
방거사는 은봉화상과 같은 시대 사람으로 청원(淸原)문하의 석두(石頭)화상과 남악(南嶽)문하의 마조(馬祖)대사의 양문하에서 도를 깨달은 사람이다.
노방거사가 석두희천(石頭希遷)을 찾아가니 물을 길고 나무를 옮기다가 먼 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것이 신통인가 ?
일용사무별 (日用事無別)
유오자우해 (唯吾自偶諧)
두두비취사 (頭頭非取捨)
처저물장괴 (處處勿張乖)
주자수위도 (朱紫諒謂道)
구산절점애 (丘山經點埃)
신통병묘용 (神通逡妙用)
운수급반시 (運水及搬柴)

라 하였다.
「날마다 분별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여 취사심을 일으키지 않고 때와 장소에 임한다.
주흥 자색을 누가 도라 말했는가, 높은 산에는 점애가 끊어졌다. 신통묘용이 별것이던가 물 길고 나무 나르는 것이 그대로 신통이라네.」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 글을 여래선(如來禪)을 깨달은 도리라 말하고 있다.

「시방동취회 (十方同聚會)
개개학무위 (箇箇學無爲)
차시선불장(此是選佛場)
심공급제귀 (心空及第歸)」

이 글은 마조회상에 많은 제자들이 모여 무위를 배우고 선불장에 나아가 급제하여 가는 것을 보고 지은 시다.
「시방세계 가운데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낱낱이 무위를 배우고 있는데 이것이 곧 부처님을 선발하는 곳이다. 빈 마음만 깨달으면 곧 급제할 것이다.」
하는 시다. 얼마나 간결하고 멋있는 시인가.
과거 급제를 보러 가다가 이 두 선사를 만나 세상벼슬을 팽개쳐 버린 노방거사는 그 뒤 그의 가족들과 함께 화롯가에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도담을 나누었다.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시봉을 들며 수족처럼 따르던 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산간계곡에 들어가 황무지를 개간하던 아들, 그 아들과 같이 살던 부인이 모두 다 탈속도인(說俗道人)이었다.
그는 이렇게 도를 깨달은 뒤에도 늘 약산(藥山)스님과 단하(丹霞)스님 등 여러 선걸들과 친교를 맺어 뒷날 공안이 될만한 갖가지 문답거리를 남겼으며. 안빈락도한 그의 가족이 남긴 일화는 많은 재가 수도인들에게 본이 되고 있다.
방거사가 말년에 호북 양주 땅 바위굴에서 집을 삼고 공부 할 때의 일이다.
그의 딸 영조(靈祖)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얘야, 밖에 나가 해를 잘 지켜보고 섰다가 정오가 되거든 애비에게 알려다오.」
영조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밖에 나가 기다리다가 들어와서 말했다.
「아버지 정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식(日蝕)을 하는군요.」
「그래, 그럼 내가 보고 와야겠구나.」
하고 아버지께서 밖으로 나가자 딸 영조는 그의 아버지께서 앉아 공부하던 장소에 앉아 그대로 가버렸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와서 보고 말했다.
「이놈 보아라.」
자리가 바뀐 것이다. 아버지가 갈 자리에 앉아서 딸이 먼저 가버렸으니 말이다.
영조는 어려서부터 화롯가에 앉아 아버지와 선담(禪談)을 하는 기운데서 이미 선기(禪機)를 체득하고 생사를 자재할 만한 능력을 얻었던 것이다.
방거사는 딸에게 한 방망이 단단히 맞은 셈이다.
「할 수 없군, 나보다 솜씨가 빠르니 나는 일주일 더 가야겠구나―」
하고 딸의 시신을 거두어 다비하였다.

방거사가 그의 딸 영조의 다비를 마치고 일주일 되는 날, 마침 그 고을 태수 우적(子顆)이 그곳을 찾아왔다.
「어서 오시오, 우적거사.」
방거사는 우적을 반가이 맞이하였다.
「참 오랫만이외다. 당신의 모습이 그리웠답니다.」
「그럴 것입니다. 허공꽃(空華)의 그림자도 떨어지고 아지랑이의 파도는 물결칩니다.」
「오. 그렇소. 그럼 나의 무릎위에 편히 누우시오.」
우적이 그의 다리를 내뻗었다.
방거사는 편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파도가 쉬이면 물결은 저절로 가라앉으리다.」
도인과 도인의 대담이다.
태수가 이렇듯 한마디 하고 나니 벌써 그는 말이 없었다.
「허허. 이사람 벌써 갔어, 너무 빠르지 않는가.」
말이 없었다. 태수는 이미 알고 온 것이지만 너무도 허망하였다.
태수는 16나한 가운데 제 5 낙거라(諾炬罪)존자의 오도송을 읊으면서 치상(致喪)하였다.

곳을 따라 나는 것 모두 길이니
공한 길에 무슨 마음
어디 걸리리
또렷이 밝고 통한
본래 마음은
안으로도 동요 없고
밖으로도 경계 없네.
선정은 달이 되고 지혜 해돋아
비치는 그 곳에는 그림자 숨어 보고 찾는 그 곳에 사마(邪魔) 없으니
번개 같은 세월마저 잊어버리소
하늘에 비 내리니 땅이 되어서
중생을 살리는 일 그지없어라
선한 마음 내지 않고 쓰기만 해도
여섯 갈래 헤매다가 쉬임이 없네.
그대여 지난 세상 생각해 보라
부귀와 영화가 모두 꿈이니
그 속에서 생사마저 벗지 못하면
끝없는 일속에서 어찌 쉬리오.
3독(毒)을 굴려서 3혜(慧) 이루고
번뇌를 굴려서 보리(菩提) 이루어
한량없는 중생들과 노래 부르라.

방금까지 자기 무릎에 누워 희롱하던 벗이 화장을 해 놓고 보니 한 줌의 재에 불과했다.
허공에 흩어 그의 뜻에 보답코자 하였으나 그동안 별거 중이던 아내가 있으므로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 또한 딸 남편에 지지않게 풍격(風格)을 갖춘 인물이라 유골을 받고도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말했다.
「정신 나간 할아범, 어리석은 계집애.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려, 그러나 할 수 있나 용서 할 수밖에―」
유골을 전한 태수의 사자는 너무 기가 막혀 입이 딱 벌어졌다.
부인이 말했다.
「이왕에 오셨으니 우리 아들에게 가서 부음(訃音)을 전해 주시오.」
하고 아들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 아들은 마침 황무지를 개간하느라고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누이가 돌아가셨습니다.」
「아, 그래요. 소식이나 알려 주실 일이지. 그럼, 이제 우리도 가야 되겠군요.」
하고 그대로 괭이를 잡고 서서 가버렸다.
얼마를 있어도 고목나무처럼 말이 없는지라 가서 만져보니 뻣뻣하게 죽어 있었다.
「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하고 그의 어머니께 이 소식을 전하니 어머니는,
「거 참, 못난자식. 가도 분수는 알고 가야지―」
하고 가서 시신을 거두어 화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때부터 각 고을 지면(知面) 친척을 찾아 그동안 소식을 알리고 떠난 뒤 오늘까지 소식이 없으니 아마 그 어머니는 육신까지 자취를 남기지 않고 열반에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부모 형제가 죽으면 불쌍하다고 울고불고 대성통곡을 한다.
하나 그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하나도 간 사람을 위해서 우는 것이 없다.
「애고(哀苦) 대고(待苦) 아이고(我以苦)」
하는 것이 모두 제 설움이기 때문이다.
애고(哀苦)란
「슬프고 괴로워서 어찌살꼬―」
하는 말이고, 대고(待苦)는
「다가오는 괴로움을 어떻게 이기고 살꼬―」
하는 말이며 아이고(我以苦)는
「내가 괴로워서 어찌 살꼬―」
하는 말이다.
인생 일대가 고통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고통스럽다고 떠들어 보았자 별것 아니다.
살아서도 시끄러운 사람이 죽어서까지 시끄럽게 하고 가면 생몸을 상처 내어 강간당한 땅이 그 추물을 어찌 처치할까 생각해 보라.
서너달 흙 속에 파묻혀 벌레 투성이가 된 부모 자식의 시체를 보고 가정의 평화를.
자손의 영화를 기원하는 사람 또한 불쌍하지 않다 할 수 없다.
그의 업적은 기리고 자손의 영화를 얻고자 하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하다가 다하지 못한 업을 계승하여 업적을 남겨 주라. 그리하면 영원히 그 삶이 허공 가운데 남으리라.
<전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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