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은스님의 대오

호은스님의 대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보은설화

• 주제 : 견성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전라도
• 참고문헌 : 속편영험설화

지리산 화엄사 선방에서 어느 해 겨울 통도사에 계신 박성월(朴性月)스님을 모셔 놓고 선객 20여명 모여 용맹정진을 하고 있었다.
일찍이 출가하였으나 사판승으로 절일만을 거들다가 장가들어 마을에 살고 있는 호은(湖隱)스님이 있었다.
한번은 절에 왔다가 수좌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운 생각이 나서 조실스님을 찾아가 의논하였다. 『스님, 나도 공부가 하고 싶습니다.』
『파거불행 (破車不行)이요, 노인불수(老人不修)여 부서진 수레는 가지 못하고 노인은 공부하기 어렵다 하지 않았는가?』
『늙기는 늙었어도 파거 불행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선방 수좌들에게 전해지자 모두 가가대소(呵呵大笑)를 하였다.
『그런 영감님이 우리 선방에 들어오게 되면 선방의 위신문제가 됩니다.』
하고 모두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 스님은 선방 안에서 받아지지 아니하면 밖에서라도 다니되 시간만은 정확히 지키겠다고 하였다.
그 또한 맞지 않는 말이다.
선을 한다는 것은 모두 방하착(放下着)하고 오직 일념으로 정진하여야만 조사관(祖師關)을 뚫을 수 있는 것인데, 마누라 곁을 떠나지도 못하고 열쇠꾸러미를 주렁주렁 메고 다니는 노인이 무슨 공부를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또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들 선방수좌들은 아직 인생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럽니다.
사람이 늙으면 방이 차고 이부자리가 불실하면 잠이 잘 오지 않고 또 하룻밤에 3·4차례씩 오줌을 누게 되니 요강이 없어도 아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는 곁에 사람이 없으면 허전하여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이 열쇠꾸러미 떼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애들한테 주고 보면 살림이 해퍼서 10년 갈 것이 5년 가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저는 집은 좀 멀지만 왔다 갔다 하면서 공부를 하겠으니 입방만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리하여 젊은 수좌들이 모두 다 반대하는 것도 불구하고 성월스님은 그에게 마지막 공부의 기회를 주었다.
『스님, 저런 늙어빠진 대처승과 어떻게 공부합니까?』
『이놈들아, 대처승과 공부를 할 수 없다면 가족 살림을 하는 신도들하고는 어떻게 공부를 하겠느냐?』
『신도는 신도이고 중은 중 아닙니까?』
『중이 신도고 신도가 중이야, 그런 분별심 때문에 공부가 도통 되지가 않는거야.
중이 깊은 산골에 들어와 있는 것은 도를 기르기 위한 것이지 승속 염정을 가리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야-』
엄중단호(嚴重斷呼)하신 조실스님의 말씀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그 뒤부터서는 다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호은 노장은 그날로부터 4분 정진을 하는데 하루 일초도 어김이 없이 들어가고 나오고 하였다.
젊은 수좌들이 노인을 싫어하는 관계로 아침에 절에 올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가기도 하고 선방에 쉬는 시간이면 사중일을 보아주기도 하여 절로 보아서는 오히려 젊은 수좌들 보다 부담 없는 일꾼을 하나 얻은 것 같아 퍽 좋았다.
이렇게 두어 달 동안을 하루도 빼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구분 없이 다니니 대중들도 감심하기 시작하였다.
『그 노장님 참 대단한데-』
『우리들과는 비교가 안돼-』
하며 칭찬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대중스님들이 성월스님을모시고 법담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최혜암 스님이 물었다.
『선문에 이르기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 하였는데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하신 말씀이 있으니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을 들은 대중은 한 사람도 대답은커녕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다.
그런데 조실스님께서는 한술 더 떠 말씀하셨다.
『찾는 소는 그만두고라도 탄소를 이리 가지고 오너라.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하지 못하면 모두 잡아 개를 주리라.』
이 문제를 제안하신 혜암스님께서도 말문이 막혀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꼼짝달싹 못하고 묵묵부답인데 호은 노장이 벌떡 일어나서 손뼉을 치며 스님 앞으로 나아가,
『탄소를 잡아 대령하였으니 눈이 있거든 똑바로 보시오.』
하였다.
이 광경을 본 대중들은 기가 막혀 질려버리고 말았다.
조실스님이 대중들에게 법상을 차리게 하고 높이 올려 삼배케하니 일자무식이었던 이 호은 노장 툭 터진 소리로 법당이 쩌렁 울리도록 한 소리를 읊었다.

흘문기우멱우성 (忽聞騎牛驚牛聲)
갑자기 소타고 소 찾는다 말을 듣고,
돈각즉시자가옹 (頓覺卽是自家翁)
당장에 타고 찾는 것이 모두 자기 주인인줄 알았네.
비거비래법성신 (非去非來法性身)
오고 가는 것 없는 것이 법성이고,
부증불감반야봉 (不增不減般若峰)
부치고 뗄 것 없는 것이 반야봉이로다.

하는 말이다. 얼마나 시원하고 통쾌한 소리인가.
호은 화상은 그날부터 그길로 내려가 마누라 손을 잡고
「당신이 항상 내 곁을 지켜 주되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므로 이렇게 되었노라.」
감사하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열쇠꾸러미를 맡겨 살림을 전한 다음 훌륭한 선객이 되어 신참선자(新參禪者)들을 지도하다가 안변 석왕사 내원암 조실이 되었다.

<속편 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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