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거사가 깨달았다가 다시 어두워졌디

진명거사가 깨달았다가 다시 어두워졌디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보은설화

• 주제 : 견성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전라도
• 참고문헌 : 불교영험설화

전주 공판사 아버지 공진명(孔眞明)은 희속승이다.
일찍이 순천 송광사에 출가하여 초발심자경(初發心自警)으로부터 사집(四集), 사교(四敎), 대교(大敎), 염송(恬頌)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전생의 지중한 인연을 버릴 수 없어 인연 따라 퇴속하고 말았다.
나이 30에 여자라고 얻어 새살림을 시작하긴 하였으나 본래 배운 것이 없는지라 그저 먹고 나면 방안에 들어 앉아 염불 참선밖에 하는 것이 없었다.
부처님이라곤 어린애들이 쓰는 도화지에 연필로 그린 사진 부처님. 길이 30센티에 넓이 10센터 되는 그 그림 부처님을 장난감처럼 벽에 붙여놓고 매일 같이 공양을 드리고 예불을 한다.
이렇게 16년을 넘어 하고 나니 가정에 남는 것은 올망졸망한 아이들뿐이고 나무한가지 쌀 한 톨 없는 신세가 되었다.
큰 아들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신문보급소에 취직하여 신문배달을 하면서도 고시공부에 열심히 하였고
둘째 아이와 셋째 넷째는 찌들은 누더기를 걸치고 그 좁아터진 방안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오줌 싸고 똥 싸고 먹을 것 달라 보채는데 가히 옛날 가난했을 때 흥부네 신세와 비슷했다.
그러나 공거사는 오늘도 변함없이 남무동방해탈주(南無東方解脫呪)를 외운다.
화가 난 아내가 말했다.
『여보, 오늘이 섣달 스무 여드레, 내일 모레가 설이 아닙니까?』
『그래 어찌란 말이오. 잔소리 말고 부처님께 마지(摩旨)나 올리세요.』
『산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그림 부처가 먹을게 어디 있어요.』
진명은 그 말을 듣고 빙긋이 웃으며 자루를 들어 만진다.
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친정에도 염치가 있어야 가지요.』
『그렇지만 할 수 있소.』
하는 수 없이 부인은 자루를 허리춤에 끼고 나갔다.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눈은 몰아치고 바람은 세차게 불었다.
다리를 건너고 산을 넘을 때마다 가지가지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홀리며 신세 한탄을 했다.
겨우 쌀두어 말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밥을 지어 부처님께 올리려고 가지고 들어왔다.

그 때 별안간 주문을 외우고 있던 공거사가 방망이를 들고 넙적 다리를 후려치며 말했다.
『이 요망한 여자야, 그 더러운 밥을 어디다가 받치려 하느냐?』
여자는 분을 참지 못해 엉엉 울면서 말했다.
『무엇이 더럽단 말입니까 ? 이것도 감지덕지 하지 않고-』
『당신 아무 산 넘어 가면서 무어라 욕하고 아무 다리 건너면서 무어라 욕하지 않았소.
사람도 그런 음식은 먹기를 꺼려하거늘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부처님이 밥이 없어 잡수시겠소?』
부인은 깜작 놀랐다.
이 분이 어떻게 나의 거동을 아신단 말인가?
진실로 천리안(天里眼), 천리귀(天里耳)를 가지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오늘 일은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진짜 산 부처님은 보지 않고 그림 부처만 보았으니 이 눈이 굼벵이 눈입니다.』
공거사는 왈칵 눈물이 나왔다.
『여보,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겐 4년이란 긴 세월의 수난이 남았습니다.
잘 참고 견디어 봅시다.』
아버지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아들도 울고 딸도 울었다.

과연 그 후 4년, 마침 큰아들이 19세 약관으로 고등고시에 일장 급제하니 집안은 일약 화장세계(華藏世界)로 변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없어졌다.
사방으로 찾고 돌아다니다가 전주 경찰서에 수감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아버지, 이게 웬일이십니까?」
『글쎄, 방귀 뀐 놈이 큰 소리 한다고 세상은 요지경 속이로구나.』
하고 아버지는 서에까지 오게 된 경위를 말했다.
『내가 도청 앞에 나와 섰다가 보니 지사가 바로 자기 조카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 놈을 잡고 생피붙은 놈이라 야단을 했더니 그의 부하들이 나를 잡아다가 여기 이렇게 가두었다. 내 말이 거짓말 같거든 지금 아무 곳에가 누구를 찾아보라.
그러면 알바가 있으리라.』
판사가 형사 두 사람을 데리고 그 곳에 가보니 과연 23, 4세 가량된 아가씨가 어린 애를 가져 배가 불러 수심에 차 있는데 그 내력을 물은 즉 아버지의 말씀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중차대한 일이라 쉬쉬쉬 하고 곧 아버지를 절로 모시고 갔다.
집에서 모시다가는 이런 일이 또 생길까 염려해서였다.

그런데 마침 그 절에는 주지스님이 출타하고 계시지 않아 마루에 걸터 앉아 쉬었다.
그때 쥐 한마리가 쌀독 앞에 나와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은 미련하지, 쌀 좀 꺼내 주면 내가 이런 고통을 하지 않을 것인데-』
하고 쥐가 말한다고―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라 아무 대답을 않고 있으니 공거사는 곧 광으로 뛰어가 쌀독을 열고 쌀 한웅큼을 집어 쥐구멍 앞에 놓아주니 쥐가 도망치지도 않고 그를 갖다가 먹었다.
조금 있다가 주지스님이 오셔서 이 광경을 보고 호통 쳤다.
『사람도 못 먹는 쌀을 이게 무슨 짓이오.』
『사람과 짐승이 무엇이 다르냐? 단지 껍데기에 둘러쓴 가죽포대가 다를 뿐―』
주지 스님은 화를 내면서,
『이런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있겠습니까?』
하면서 곧 데리고 가라 하였다.
하는 수없이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는데, 전주 역전 부근에 이르러 서울행 완행열차가 지나가면서 기적 소리를「적」하고 지르는 바람에 그만 공거사는 귀가 먹고 반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아깝다. 공거사의 공부 닦은 내력이여, 진명(眞明)은 본래 밝고 어두움 없건마는 사람이 분별을 따라 밝고 어두움 일으키네.』

<불교 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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