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다

사복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자재설화

• 주제 : 자재
• 국가 : 한국
• 시대 : 신라
• 지역 : 경상도
• 참고문헌 : 삼국유사

서울 경주의 만선북리(萬善北里)에 한 과부가 있었다.
남편도 없이 아이를 배어 낳았는데, 그 아이는 나이 12세가 되어도 말도 하지 않고 또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사동(蛇童)―아래에서는 혹 사복(蛇卜) 또는 사파(蛇伏)등으로 썼으나 모두 사동을 이름이다―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 때 원효는 고선사(高仙寺)에 있었다.
원효는 그를 보고 영접했으나 사복은 답례도 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대와 내가 옛날에 경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지금 죽었으니 함께 장사지냄이 어떨까?」
「좋다.」
마침내 원효는 그와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다.
원효에게 포살(布薩)시켜 수계(授戒)하게 하니 원효는 그 시체 앞에 가서 빌었다.
「나지 말라, 죽는 것이 고통이니라. 죽지말라. 나는 것이 고통이니라.」
사복은 말했다.
「말이 너무 길다.」
원효는 이를 고쳐 말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고통이니라.」
두 사람이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동쪽 기슭을 갔다.
원효는 말했다.
「지혜(智慧)있는 호랑이를 지혜의 숲 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어찌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복은 이에 게송(偈頌)을 지어 불렸다.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하셨는데
지금도 그와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들어가려 한다.

말을 마치자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속에 명랑하고 청허(淸虛)한 세계가 있어 칠보(七寶)로 장식한 난간에 누각이 장엄했다. 아마 인간 세계는 아니였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그 속으로 들어가자 그 땅이 갑자기 합쳐졌다.
원효는 이에 혼자 돌아왔다.
뒷 사람들이 그를 위해 금강산(=경북 영천군에 있음)동남 쪽에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도장사(道場寺)라. 했는데, 해마다 3월 14일에 점찰회(占察會)를 여는 것으로써 항규(恒規)로 삼았다.
사복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다만 이것뿐인데, 세간에서는 황당한 얘기를 덧붙여 핑계했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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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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