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수바두

바수바두

[ 婆藪槃豆 ]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포교설화

• 주제 : 포교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파수바두전

바수반두(婆藪槃豆=世親菩薩)라는 법사는 북인도의 후르샤프라국의 사람이다. 그런데 이 후르샤프라라는 나라의 후르샤라는 것은 튼튼하다는 의미이며, 프라라는 것은 땅이라는 의미니까 튼튼한 땅이라는 뜻이다. 이 나라를 왜 튼튼한 땅이라고 하게 된 것이냐에 대해서는 옛날부터의 전설이 있다.
옛날 제석천(帝釋天)의 아우에 비시누천(天)이란 자가 있었다. 제석천은 비시누천을 엔부다이에 파견하여 왕으로 삼아 아수라(阿修羅)를 정복시키도록 했다. 드디어 아수라와 비시누와의 전쟁이 벌어지려하고 있었다.
이때, 이 아수라에게 한 여동생이 있었다. 이름을 하바티하라, 곧 명비(明妃)라 하여 대단히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여성이었다. 아수라는 여동생 하바티하라를 속이고 데리고 나와 주술(呪術)의 힘으로 엔부다이를 바꾸어 암흑의 세계와 광명의 세계로 만들었다.
그리고 암흑의 세계에는 자기가 살고, 광명의 세계에는 여동생을 살게 한 후, 그 여동생에게 말했다.
『만약 네 자색을 보고 너를 아내로 삼겠다고 신청하는 사람이 있거든,
「제 오빠는 너무나 기운이 센 장사이고, 항상 제가 시집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어요. 만약 꼭 저를 아 내로 맞고 싶으시다면 제 오빠와 싸워서 승부를 결정해 주세요.」
하고 말하란 말이야. 알았니?』
하고 몇 번이나 다짐하며 타일러 두었다.
그런 일을 까맣게 모르는 비시누천은 광명의 세계에서 명비(明妃)를 보고 그만 홀딱 반해버렸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아수라의 처녀입니다.』
『아아, 그러십니까. 그런데 아수라의 처녀들 대부분은 모두 제천에게로 시집을 가버렸습니다. 저는 아 직도 아내가 없는 몸, 그대도 아직 남편이 없는 몸이니, 어떨까요. 서로 다정한 부부가 되지 않으려십니까?』
하며 그녀에게 자꾸만 대답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그녀는 오빠가 반대하니까 오빠와 전쟁해서 그 승부로 결정하자고 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만일 나를 그처럼 사랑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냥 물러날 수 있겠소. 알았습니다. 나에게도 당신 오빠 못지 않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 오빠와 전쟁을 하지요.』
하며 비시누천이 열열히 구혼했으므로 명비도 드디어 결혼을 허락하고 부부가 되었다.
아수라는 뒤에 광명 세계로 가서 비시누천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내 여동생을 아내로 삼았는가?』
『내가 만약 이렇게 건장한 사내대장부가 아니라면 혹 책망할 법도 하지만, 나는 보는 바와 같이 이렇게 튼튼한 대장부이자 홀아비이며 그대의 여동생도 남편이 없는 처녀이니까 내가 결혼한 것이다. 그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 무엇이 시빗거리가 있느냐?』
『너는 제 스스로 대장부라고 지껄이지만 어디가 그렇게 튼튼한 대장부란 말이냐? 만약 대장부라면 나 와 싸와서 승부를 결정하자. 만약 네가 이기면 그때는 다시 내 여동생을 그대에게 주마.』
『그대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도리없다. 그러면 누가 승리를 하는가 시험해 보자꾸나.』
이렇게되어 각자는 서로 칼을 뽑아들고 싸우게 되었다.
비시누천은 나라엔천이라고 불리우는 대역사(大力士)인 까닭에 몸에 입는 상처는 살속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아수라 역시 비시누천의 칼에 댕강 잘린 목이 어느새 본래대로 붙어버리는 것이었다. 손이건 발이건 무릎이건 모두 칼날에 끊긴 자국은 곧 되달라 붙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싸움이 새벽부터 시작되 밤까지 계속되어 그칠줄 몰랐으나 아수라는 죽을 듯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비시누천은 약간 힘이 빠지고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밤새도록 이 싸움이 계속된다면 도리어 아수라 편이 힘이 셀 것 같았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명비는 남편의 형세가 불리함을 걱정해서 아수라의 비법을 암시했으므로 드디어 아수라에게 이겨서 그를 넘어뜨릴 수 있었다.
아수라는 전에 선인(仙人)에게서 술법을 배운 일이 있었다. 그것은 몸이 칼로 잘리든가 찔려도 끊어져도 곧장 원상대로 붙어서 회복되어 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선인도 지금은 비시누천으로 하여금 아수라를 죽이게 하려고 했으므로 이젠 더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마침내 아수라는 죽어버린 것이다.
이 나라 국사인 바라문에게 성을 교무시까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 같은 바수반두 즉 천친(天親)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인도에는 이런 습관이 있어서 동일한 이름 위에 다시 별명을 붙여 부르는 것이다.
제三의 바수반두는 별명을 히린지밧봐 즉 히린지라는 어머니의 아들이란 의미이며 소승경(小乘經) 일파의 살바다부(薩婆多部)를 출가하여 아라한의 지위를 얻은 사람이다.
제一의 바수반두는 대승불교의 보살로 될 사람이며 역시 처음에는 살바다부(薩婆多部)에서 출가하여 선정(禪定)을 수행하고 삼계의 욕망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었다. 그 위에 공(空)의 깨우침을 얻으려고 무진 노력했지만 오달을 얻지 못하고 자살을 하려고 했다.
그때 빈주르존자가 토우비다이까라는 곳에 있다가 이것을 보고 그쪽에서 와서 소승의 공관(空觀)을 설명했다. 바수반두는 그가 가르치는 대로 해서 소승공관(小乘空觀)에 달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신통력으로 도솔천(兜率天)에 가서 친히 미륵보살을 만나 대승의 공관을 받아 다시 엔부다이에 돌아와서 설법대로 사유 고찰한 결과 그 오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천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 했다는 것이다.
이 인연으로 바수반두는 그 이름을 아승가(阿僧伽) 즉 무착(無著)이라고 불리웠다.
무착은 그 뒤 여섯 번 도솔천으로 가서 미륵보살에게 대승경의 뜻을 질문했다. 미륵보살은 그를 위해서 널리 그 뜻을 설법해 들려주었으므로 그는 크게 얻는 바가 있어 엔부다이에 돌아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설법했건만 믿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서원(誓願)하기를,
『저는 지금 중생에서 대승을 신해시키려고 생각하옵니다. 아무쪼록 미륵보살님이시여! 엔부다이에 하 강하시사 대승을 해탈하여 여러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신해하게 해주십시오.』
미륵보살은 그 서원을 들으시고 어느 밤에 엔부다이에 내려오셨다. 그리하여 대광명을 발하여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설법하는 대강당에서 십칠경을 읽으셨다. 그리고 읽으신 것에 대해 자상하게 그 의의를 강론하셨다. 이렇게 4개월쯤 지난 어느날 밤, 십칠경의 강의가 막 끝나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일당에 모여 그 설법을 듣고 있었으나 그 진의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착만은 미륵보살에게 가까워짐을 얻어서 그 설법하시는 바 진의를 잘 해득했으므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낮 동안에 그 설법의 해석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사람들이 미륵보살의 대승교를 듣고 모두 믿게 되었다.
무착은 미륵보살로부터 전수 받은 일광삼마제(日光三摩提)라는 좌선삼매(坐禪三昧)를 수행하여 점점 더 심오한 오달을 얻어서 이제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도 모두 다 통달할 수 있게 되어 보고 듣는 것은 어떤 것이건 오래 오래 기억하여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이와 같이 무착은 도솔천에서 미륵보살의 대승경의 대의를 모조리 전수 받아 엔부다이에서 대승경의 우바제사(優婆提舍)라는 해석서를 많이 만들어 여러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였다.
다음, 제二의 반수반두로 또한 살바다부(薩婆多部)에서 출가했다. 박학다식하고 또한 지혜가 뛰어났으며, 능히 계율을 잘 지켜 수행했으므로 그의 앞을 능가하는 자가 있었다. 형제는 따로 별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만은 그냥 부수반두, 즉 천친(天親)이라고 불렀다.
천친은, 처음에 살바다유부에서 출가했으나 뒤에 경부(經部)의 설을 좋아하게 되어 유부(有部)의 교의를 고치려 뜻했다.
먼저 유부의 근본 경전인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을 연구하기 위해 게이힌국에 유학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이 지방에는 공의를 국외로 전하는 것을 엄금하고 타국인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이름을 바샤밧다라(婆娑跋陀羅)라고 개명하고 복장을 바꾸어 때로는 미치광이가 되기도 하고, 혹은 어리석은 바보로 가장하여 고심 참담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거기 있은지 사년이 되었다. 그동안 대학자 오입(悟入)은 사람이 반드시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는 틀림없이 천친이라고 주목했다.
『확실히 이는 천친에 틀림없어.』
이리하여 마침내 그에게 간파되고 말았다.
오입은 어느 날 천친을 몰래 불렀다.
『내 제자 중에는 아직 득도하지 않은 자가 있다. 그대의 항의를 들으면 혹, 그대에게 불의의 환란을 일으킬지 모르니 빨리 그대의 나라로 돌아가는게 좋을 것이다.』
하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으므로 천친은 거기를 떠났다.
그는 켄다라국에 돌아와 사람들을 위해서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을 강의했다. 하루 강의하면 한 게(偈)를 지어서 도합 육백게송이 되었으므로 뒤에 사람을 시켜 이것을 케이빈왕과 여러 승려들에게 보이게 했다.
일동은 모두 기뻐했다. 모두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다. 우리 종의(宗義)를 넓히는 것이다.』
하며 찬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오입(悟入)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 육백게송은 우리 종의(宗義)를 넓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해서 일동은 당장 사람을 보내어 이것을 물어 보도록 했다.
천친은 그 육백게송의 해석을 하며, 왕왕 경부(頸部)의 교의로 보석(補釋)하고 유부(有部)의 교의에 일대 개선을 해서, 이에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삼십권이 되었으므로 이것을 케이빈국에 보냈다.
그런데 과연 오입(悟入)의 말과 같았으므로 그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제는 도리어 천친을 비난하는 소리가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오입의 제자 슈우켄이었다. 그는 천친의 소위에 분노를 느끼고 자기도 연구하여 어언 십이년, 마침내 순정이론(順正理論) 팔십권과 현종론(顯宗論) 사십권을 저술하여 천친의 예봉을 꺾기위해 준재인 제자 수명을 거느리고 몸소 천친을 찾아갔다.
마침 그때, 젯가국의 샤가라라는 성중에 있던 천친은 슈우켄이 왔다는 것을 듣고, 갑자기 여행할 준비를 서둘렀다.
제자들은 전에 없던 스승의 태도에 놀라서 말했다.
『스승님의 덕은 높으시고 명성은 당대의 으뜸이십니다. 왜 그렇게 당황하며 두려워하십니까.』
『내가 오랫동안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별로 슈우켄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물론 슈우켄은 내 후진이고 궤변이 유수 같은데 비해 나는 이미 연로하니까 여기서 슈우켄과 맞서 토론한다는 것은 득책은 아니 다. 지금 한말로 그의 설을 타파해 주고도 싶지만 이 나라 안에는 그것을 보아 줄 학자도 없으니 대학 자가 많이 있는 중인도로 가서 진위득실(眞僞得失)을 명백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고 천친은 제자들에게 말한 후 나귀 등에 책 상자 등을 싣고 멀리 떠나버렸다.
그 뒤 슈우켄이 왔다. 그는 천친이 떠나고 없는 곳에 당도하자 갑자기 급병을 얻어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 임종을 앞에 두고 마침내 천친에게 사과하는 유서를 썼다.
『여래께서 멸하신 후 제자들은 부파에 집착하여 그 종학(宗學)을 전하고 각자 제마음대로 여기에 편 승하여 왔습니다. 저는 우매한 것이 함부로 전습을 받들어 선생의 구사론(俱舍論)에 비바사(毘婆沙)의 대의가 깨뜨려지는 것을 보고 스스로 그런 그릇됨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히 십유여연의 연구를 거쳐 이 논설을 만들어서 약간이나마 우리 종(宗)에 공헌 하고자 했었아오나, 지혜는 적고 꾀하는 바는 커서 이제 저는 바야흐로 죽음 앞에 이르러 있습니다. 아무쪼록 소생의 이 미의(微意)를 양찰하시어 저의 유문(遺文)을 보존해 주실 수 있다면 여기에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는 사후에라도 아무런 후회가 없겠나이다.』
슈우켄은 이 유서와 유저(遺著)들을 제자들에게 부탁하고 숨을 거두었다.
『슈우켄은 참으로 현명하고 영리하고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논설이야말로 나무랄데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의 유탁을 받았다. 어떻게 함부로 이것을 깨뜨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그 논지(論旨)가 유부(有部)의 종의(宗意)에 합당한 것인데야 더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하고 말했다.
이때 천친의 제자 중에는 그런 스승의 처사를 의심하는 자가 있었으므로 천친은 송(頌)을 지어 보여 주었다.
『사자왕이 돼지를 피해서
멀리 떠나감과 같으니,
두 힘의 승부를
오직 지자(智者)는 알리라.』

이보다 앞서서 빈쟈카바샤라는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크게 불교를 타파하려고 아유쥬국(國)에 들어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만약 누구든지 나와 토론해서 이기면 내 머리를 주겠다. 만약 나에게 지면 그 머리를 내가 받으리 라.』
국왕인 히가라마카짓타는 이 말을 듣고 그 외도를 불러 물었다.
『그대가 정말 토론에 지면 목을 바치겠는가?』
『대왕은 한 나라의 주인이십니다. 중과 바라문과의 사이에 갑과 을을 붙쳐서 불합리한 귀급을 하실 염려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석가의 제자들과 승부를 다루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제 머리를 걸겠다는 것을 대왕전하 앞에서 맹세하는 바입니다.』
라고 말했으므로 왕은 이것을 허락하고 사람을 보내 국내 승려들에게 알렸다.
『누군가 이 새로운 사상가와 토론할 자는 없는가? 있으면 곧 신청하도록 하라!』
마침 이때에는 마도라다라든가 바스반두와 같은 유명한 여러 대법사는 모조리 타국에 가고 부재중이었다.
다만 불타밀다라(佛陀蜜多羅), 즉 각친(覺親)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은 상당한 학자이긴 했지만 이제는 이미 노년이어서 원기라든가 변설 등이 모두 보잘 것 없는 형편이었으나,
『우리 법계의 대장들은 모두 국외에 나가고 없다. 그러나 외도의 장자들에게 제멋대로 내버려 둘 수 는 없다. 나는 비록 늙었지만 이 일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외곬으로 법을 지키는 자 다웁게 왕에게 이것을 신청했다.
왕은 곧 날짜를 결정하여 널리 대중에게 알리고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여 대의사당에서 토론을 시키기로 했다.
좌석을 정하자 외도가 먼저,
『사문이여, 대의를 세우려면 세워 보시라. 나는 그것을 철저히 깨뜨려 보일테니까.』
라고 말했기 때문에 불타밀다라는 불끈 노기를 머금고 말했다.
『나는 마치 대해(大海)와 같아 무엇이건 용납하지 않는 것이 없다. 너는 마치 흙덩이와 같아 속에 잠 기면 곧 어디로 인지 모르게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그대에게 따른다는 것은 내 뜻이 즐겨하지 않는 바이다.』
『하하하, 처음부터 그렇게 화를 내시면 곤란합니다. 뭐라고 하든지 먼저 당신이 문제를 내시오. 문제를…. 처음부터 깡그리 내가 그것을 타파해 줄 것이요.』
『그렇다면 내가 먼저 문제를 제출하겠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찰나찰나멸(刹那刹那滅)이라고 해 서 모든 눈에 보이는 현상인 존재물은 시시각각으로 변천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떠냐고 하면 뒤 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기 때문이다.』
하고 불타밀다라는 여러 가지 도리로써 이것을 설명했다.
그러자 외도는 불타밀다라가 말한 것을 모조리 입에 올려 다시 되풀이해 말해가면서 차츰 도리를 따져서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다. 그리고 불타밀다라가 입을 열려고 하면 재빨리 말을 못 끄내도록 막아버리고 잘못된 것을 반박하려고 하면 이것을 못하도록 약삭빠르게 말을 돌려버려 마침내 불타밀다라는 외도의 변설에 지고 말았다.
외도는 의기양양하여,
『당신은 바라문의 종족입니다. 나도 또한 바라문의 종족이니까 규칙으로써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회초리를 들고 당신 등을 때려서 내 승리를 나타내기로 하겠오.』
하면서 이 연로한 불타밀다라를 사정없이 회초리로 쳤다.
왕은 또한 외도에게 많은 상금을 주어 이를 포상했다. 외도는 이 상금을 국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뿌려 주고 빈쟈가산(山)에 돌아갔다. 돌로 만든 암굴속에 들어가서 주술(呪術)의 힘으로 야차신녀(夜叉神女)를 불러 탄원했다.
『내가 죽은 후에는 몸이 변해 돌이 되어 영원히 깨뜨려지지 않게 하소서.』
신녀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외도는 스스로 돌을 쌓아 암굴의 입구를 틀어막고 그 속에서 목숨을 마치고 돌이 되었다. 이것은 이 외도가 그 스승 용왕에게 일찍이 원구한 일이 있었다.
『바라옵건대 이 몸이 아직 괴멸되기 전에는 제가 저술한 승법론(僧法論)도 또한 괴멸되지 않기를….』
이런 비원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아직도 승법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한편, 먼 여행에서 돌아온 천친은 이런 사정이야기를 듣고 탄식하고 또한 격분했다. 그리하여 곧 사람을 보내어 빈쟈가산에서 외도를 찾아오게 했다.
그와 만나면 그 만심(慢心)을 때려부수고 불타밀다라의 치욕을 설분하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암굴 속에서 몸이 차가운 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천친은 더욱 분하고 노여웠다. 그리하여 칠십진실론(七十眞實論)을 지어 외도가 저술한 승법론(僧法論)을 때려부셨다.
이 칠십진실론 앞에는 과연 그러한 승법론도 한 마디 이론이 서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타파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여러 외도들은 이제는 자기 차례라고 모두를 두려워하며 근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천친은 그 외도를 직접 만나 논전을 벌인 일은 없었지만 이미 그 도배들을 논설로 깨끗이 물리치고 여기에 그 설욕을 할 수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듣고 모두 기뻐했다.
왕은 많은 상금을 내려 천친의 공을 치하했다. 천친은 돈을 삼분하여 아유쟈국(國)에 비구니사(比丘尼寺), 살바다부사(薩婆多部寺), 대승사(大乘寺)의 세 절을 건립했다.
그리고 나서 천친이 스스로
『내 이미 늙었다.』
고 말한 것으로 보아도, 얼마나 소승교(小乘敎)의 시대가 장구했던가를 알고 있다. 이때 대승교를 선전하고 있던 그의 형 무착(無著)은 이것을 보고 항상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유쟈국에 있던 천친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는 지금 중병이 걸려 위독하니 곧 와 달라.』
고 편지를 보냈다. 천친은 황급히 본국으로 돌아와 형을 찾았다. 그러자 형이 말했다.
『나는 마음에 중병이 들어 있네, 그것은 자네 때문에 생긴 병일세.』
『아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소승교에 집착해서 조금도 대승불교를 믿으려고 않는다. 뿐만 아나라 대승은 불설이 아니라고 조차 비방하고 있다. 이 악업의 인연으로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 괴로워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주야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까닭에 목숨이 이제 경각에 있네.』
이 말을 들은 천친은 크게 놀랐다.
『그러면 형님, 너무 번뇌하시지 말고 대승교의 묘지(妙旨)를 저에게 설법해 들려주십시오.』
하며 형 무착에게 간청했다. 형은 쾌히 승낙하고 대승교의 요의(要義)를 역설해 주었다. 본시 지혜가 탁월한 천친이었다. 그는 곧 대승교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이렇게 생각했다.
「소승은 전혀 대승만 못하다. 소승에 비하면 대승은 월등하게 훌륭한 것이구나. 만약 대승이 없었더라 면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이 오달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전날 그것을 모르고 대승을 비방하며 조금도 믿지 않았었다. 이 죄업으로 나는 반드시 악도(惡道)에 들어갈 것이 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리하여 전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형에게 가서 사죄했다.
『형님, 제가 전날에 대승을 비방한 것은 혀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이 혀를 쪼개서 참회하겠습니다.』
그러자 형 무착은 이 말을 듣고 타일렀다.
『네가 혓바닥 천개를 쪼개어 이 죄를 소멸시키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죄를 소멸시키자 면 그런 방법으로서가 아닌 다른 방법이 있네.』
『형님, 다른 방법이 무엇입니까?』
『네 혀는 흔히 대승을 비방했다. 네가 진실로 죄를 소멸시키고 싶거든 그 혀로 대승을 찬양하도록 하 게.』
천친은 형의 훈계를 듣고 깊이 마유 속에 감동을 느꼈다. 그리하여 구 뒤 많은 대승론을 저술하여 대승불교의 선포에 힘썼다는 것이다.

<婆藪槃豆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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