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사리

부처님의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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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사리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불본행집경

중생들의 고난과 구박을 풀어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부처님은 80세로 일기를 쿠시나가바성 사라방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의 시신(尸身)은 법식대로 잘 모셔 천관사(天冠寺) 화장터로 옮겨졌다.
그런데 그 때 대가사파존자가 바파성으로부터 쿠시나가라성으로 가는 도중 5백 제자와 함께한 숲사이에서 쉬고 있었는데 나행자(裸行者) 한 사람이 한 손에 만다라(曼陀羅)꽃을 들고 쿠시나가라성 쪽에서 걸어왔다.
「어디서 오십니까?」
「쿠시나가라성에서 옵니다.」
「그럼 우리 부처님의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그는 벌써 닐바나에 드신 지 7일이 되었습니다. 나도 거기서 이 꽃을 얻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가사파존자는 크게 놀라며 비구들을 데리고 급히 천관사로 갔다.
다비일(茶毘日)이 되어 천관사에서는 말라나국의 족장 4사람을 시켜 불을 붙였으나 전혀 타지 않으므로 아난다가 보고
「이는 분명 대카사파존자가 오시지 않은 까닭이니 기다려 보자」
하고 있을 때 곧 카사파존자가 당도하였다.
가사파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비통한 소리로
「세존이시여, 어찌 이토록 빠르게 가십니까?」
하니 붓다는 그의 두 발을 관 밖으로 쑤욱 뻗어 내 놓으셨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여러분이 각자 투득(透得)하여야 할 관문(關門)의 하나다.
시루위의 떡이요, 소반위의 밥이다.
선가(禪家)에서는 이것을 곽시쌍부(諦示双胥)라 하여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나누어 앉으신 일과 영축산에서 금비라 꽃을 들어 보이신 일과 함께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한 표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가사파의 예배가 끝나자 붓다의 시신은 곧 점화되었다.
관곽은 순식간에 깨끗이 타 숯덩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이상한 광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붓다의 유해가 낱낱이 정골사리(精骨舍利)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장례에 참석했던 여러 나라의 대신들은 이것을 보고 각기 자기들의 인연을 내세워 가지고 가려고 주장했다.
마가다국 아사세왕과, 베사리성의 이차족, 라마가국(羅摩伽國)의 사람들은
「붓다도 우리와 같은 찰제리족이므로 우리가 모셔야 한다.」
하고 카펄라국의 샤카족은
「붓다는 우리나라 출신이니 우리가 모셔야 한다.」
하고 또 쿠시나라국가의 말라족은
「붓다는 우리와 인연이 깊어 우리 땅에서 돌아가셨으니 우리가 모셔야 한다.」
고 제각기 주장했다.
이 때 향성(香姓) 바라문과 성연(性烟)바라문 돌로나(突路拏) 바라문들이 이 광경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우리 붓다는 오직 자비와 평등인욕으로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의 성자 앞에 그의 사리를 놓고 4성을 논하고 연고를 따져 서로 시비를 논한다면 결국 붓다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밖에 안됩니다.
그러니 불다의 사리를 꼭 같이 분배하여 나누어 봉안하도록 합시다.」
이 말에 모든 군신들이 모두 동의하여 불다의 사리를 마가다국의 아사세왕과 베사리성의 이차족, 암마라할파국의 발리족(跋離族), 카필라국의 샤카족. 라마가국의 식이족, 페슬노의 바라문족, 바파성의 말라족 주시나라국의 말라족이 똑같이 여덟 등분하여 나누고 향성 바라문은 사리를 담았던 항아리를 가져 갔는데 필발라국의 모리야족이 너무 늦게 와서 화장터에 흩어진 재를 모아 가져, 전인도에 붓다의 사리탑은 8개,병탑 1개, 채탑 1개 하여 모두 열개의 탑이 생기게 되었다.

<불본행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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