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도인

중광도인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자재설화

• 주제 : 자재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경기도
• 참고문헌 : 속편영험설화

그는 언제나 종로 네거리에서나 동대문 네거리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고 강아지 한 마리를 가슴에 안고 거리를 배회한다.
사람들은 그만 나타나면,
「어, 저기 걸레 나타났어. 걸레‥‥」
하고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
따라다녀 보아야 먹잘 것도 한 가지 없는데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한다.
하루는 술에 취하여 자고 있는데 귀한 손님이 오셨다.
「록펠러 재단 사무총장.」
미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이라, 우리나라 고려대학교에서 초청하여 10여 차례 강연회를 갖고 대통령까지 만나본 사람이다.
이 사람이 어느 날 아침 코리아 타임지신문을 보다가
「미친 중 중광」
의 기사를 읽고
「미친 중이라니, 중이면 중이지 어찌 미친 중이 있다는 말이냐.」
하고 그를 만나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곳곳에 수소문하다가 겨우 조계종 총무원을 통하여 동대문 감로암을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공교롭게도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있었다.
강아지를 안고 코를 고는 폼이 너무도 부러워서 깨지 못하게 하였으나 한 시간을 기다려도 일어날 기색이 없었으므로 부득이 안내인이 깨었다.
「중광스님, 중광스님. 여기 귀한 손님이오셨습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중광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서,
「뭐, 귀한 손님이라고―」
「예, 미국 록펠러 재단 사무총장이 오셨습니다.」
「뭐?, 록펠러 재단 사무총장이라고, 사무총장이면 사무총장이었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이 말을 듣고 사무총장은 급히 그의 옆으로 나아가 인사를 하였다.
「니 이름이 뭐야.」
「저는 미국 록펠러 채단 사무총장입니다.」
「그것은 직함이고.」
「로버트 그레이입니다.」
「그것은 네 아비가 지어준 이름이고, 그 이름 이전의 이름이 무엇이냔 말이야.」
이건 처음 듣는 말이라 어리벙벙하여 말문이 막혔다.
「제 이름도 모르는 자식이 록펠러재단 사무총장이더냐.」
「저녁 공양이나 제가 내겠습니다.」
「약속 있어. 가고 싶으면 나를 따라가자.」
「그냥 가면 됩니까?」
「옷을 입어야지―」
「무슨 옷을 입습니까.」
「거지 옷이야―」
호기심이 난 사무총장은 청계천에 가서 허름한 조막 한 벌과 조화 벙거지를 사서 입고 신고 나니 천연한 거지다.
장소는 청계천 지하실, 옛 룸싸롱과 화랑이 폐쇄되고 오줌 똥 냄새가 진동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림 그리는 화가 한분과 시인 한분, 그리고 음악하는 사람 한분해서 모두 세분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있었다.
중광스님이 들어가니 모두 5체투지로 큰절을 하였다.
「음, 잘 있었어. 가자.」
하더니 깡통을 들고 한바퀴 돌았다.
이집 저집 음식점에서 먹고 남은 찌꺼기들을 모으고, 음료수라곤 소주, 막걸리, 콜라, 사이다가 한데 뒤범벅이 된 것을 얻어가지고 와서 달게 먹었다.
록팰러 재단 사무총장이 깡통속의 꿀꿀이죽을 뒤적이며 망설이자
「밥도 먹을 줄 모르는 바보.」
하고 군화발로 가슴을 차버린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흉내를 내며 그들의 삶을 탐색할 욕심으로 억지로 먹었다.
공양이 끝나자 법회가 벌어졌다.
격식 없는 술잔에 왔다갔다 하더니 마음 내키는 대로 바가지로 떠서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런데 거기 나오는 노래 또한 가관이었다.

바다건너 물길따라 천리만리 건너온 놈
이름도 성도 모르는 놈이
사람흉내 내려다가 짐승꼴이 다 되었네.

쿵작쿵작―무슨 노래가 나오든 악기 치는 손은 잘도 돌아갔다.
밤이 늦도록 그들은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고 적나나(赤裸裸) 적쇄쇄(赤灑灑)한 마음으로 즐겼다.
이튿날아침 새벽 3시가 되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광스님은 감로암에 이르자마자 냉수에 목욕하고 법당으로 들어갔다.
8시가 지나가는데도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마치 태산과도 같았다.
무엇을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연 5일을 따라다니던 록펠러 총장은 제5일에 이르러서 비로소 손을 들었다.
배탈이 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길로 미국에 가서 5일 동안 본 내용을 책으로 폈다.
8절지 280폐이지의 W판 책을 내었다.
「한국의 피카소, 중광스님.」
중광스님은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에겐 그런 이름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 누가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은 자기와는 관계가 없다.
미국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옷에도 상관없고 먹는 것에도 상관없고 자는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름도 상관없고 재물도 상관없다. 가는 곳이 모두 그의 집이고 만나는 사람이 모두 그의 자신이다.
형제적인 관념까지도 이미 떠나 있기 때문에 그는 자유인이다.」
그렇다. 우리는 먹고 입고 사는 것에 걸려있고 이름과 재물과 모든 것에 걸려 체면 때문에 자유를 상실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다.
왜 우리는 남의 일에 관심이 그처럼 많은지 알 수없다. 그의 그림은 구상이 없다.
때를 따라 곳을 따라 손으로 그리기도 하고 발로 그리기도 하고 궁둥이로 그리기도 하고 그 것으로 그리기도 한다.
머리에 헤드라이트와 같은 눈알을 두개씩이나 단 달마를 그려놓고, 거기 이런 글을 써 놓는다.
「괜히 왔다 가는구먼―」
누가 오라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가라고 해서 가는 것도 아닌데 인생은 괜히 왔다간다 하는 가운데서 자기 고락(苦樂)에 빠진다.
천진난만한 동자, 염정불이(染淨不二)의 연꽃, 벽을 바라보는 달마, 남의 등을 함부로 올라타는 장끼, 방울 끝에 직사포를 끈덕거리며 두 뿔로 우겨대는 황소― 이 모두가 그의 심상을 그려놓은 열화(熱畵)이지만 그는 두 번 다시 똑같은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
청초한 학을 보면 청초한 학의 춤이 나오고 닭싸움을 보면 거치른 말소리가 그들의 따귀를 내려 갈긴다. 어여쁜 사람을 보면 부담 없이 궁둥이를 두들긴다.
어른이나 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구별 없다.
나오는 말이 때로는 격을 넘기 때문에 도인(盜人)이요, 광인(狂人)이다.
그러나 그는 먼 길을 가는 도인(道人)이요, 도반(道伴)이다.
만인 속에서 만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하는 도인, 그의 역사는 이제 우리 세대를 훨씬 넘어 에덴동산에서 꾀를 벗고 살아도 말이 없는 그때 천년 후에나 다시 이야기될 것이다.

<속편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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