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옥스님 일체에 자재하다

일옥스님 일체에 자재하다

[ 一玉- ]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자재설화

• 주제 : 자재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전라도
• 참고문헌 : 일옥선사집

일옥(一玉) 스님의 호는 진묵(震默)이다.
1562년에 태어나 1632년 70여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일화와 이적을 남겼다.
7세에 전주 봉서사(鳳棲寺)에 출가하여 내외 제전을 배웠는데 머리가 총명하여 하나를 들으면 천을 깨달았다.
하루는 절에서 불사가 있어 그 일을 주장하는 스님이 비록 대사가 나이는 어리더라도 깨끗한 행이 있다고 하여 대사를 시켜 불단(佛壇)을 호위하고 향을 받드는 소임을 맡겼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밀적신장(密跡神將)이 그 일을 주장하는 스님 꿈에 나타나 우리 여러 신들은 다 부처님을 호위하는 신기(神稀)들인데 어찌 감히 도로 부처님의 경례를 받을 수 있겠는가?
빨리 그 향 받드는 사람을 바꾸어 우리들로 하여 금 아침저녁에 불안이 없게 하라. 하였다.
대사는 사미로 있을 때 창원 마상(산)포(晶原 馬上(山)浦)를 지내다가 어떤 동녀의 사랑을 받고 부득이 그녀와 상종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드디어 죽어 남자로 태어났다가, 마침 전주 대원사(大元寺)에서 대사를 만나 그 시봉이 되어 이름을 기춘(奇春)이라 하였는데 대사는 그를 돌보아 사랑하여 그와 함께 이락삼매(離樂三味)에 유희 하였다.
그러나 누가 능히 진실이 티끌 속에 있으면서 홀로 빛나는 경지를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슬기의 눈이 없는 스님네들은 기춘을 위해 국수 한 턱을 내라고 대사에게 청하였다.
대사는 스님네에게 명령하여 함께 앉아 바루를 펴고는 시자를 시켜 각각 바루 안에 바늘 하나씩을 던져 넣었다.
그런데 대사의 바루의 바늘은 가는 국수로 변하여 바루에 가득 담겼으므로 대사는 태연자약하게 그것을 자시고 계셨다.
그러나 다른 스님네의 바루에는 여전히 그 바늘 하나씩 뿐이었다.
또 그 노모를 전주 패막촌(倭幕村)에서 봉양하면서 대사는 그 마왜 뒤에 있는 일출암(日出庵)에 계셨다. 여름이 되면 그 어머니가 모기 때문에 괴로워하였으므로 대사는 산신에게 부탁하여 모기를 모두 쫓아 버리게 하였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 온 마을에 모기가 아주 없어졌다.
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대사는 이런 제문으로 제사를 모셨다.

「태안의 열달 은혜를
무엇으로 갚사오며
무릎 밑의 세 해 양육은
잊을 수 없나이다.
만세 위에다 다시 만세 더하여도
자식의 마음 오히려 미흡한데
백년 안에서 백년을 못 채우니
어머님 수명 어이 그리 짧으신가?

외짝 표주박 들고 길에서 행걸하는
외로운 이 중은 이미 그렇거니와
비낀 비녀로 안방에서 혼인 못한
저 누이 동생 가엾지 않나이까?

상단(上壇) 마치고 하단(下壇)도 또 파하고
스님들은 각기 제 방으로 갔나니
앞산은 첩첩(壘疊)하고 뒷산은 중중(重重)한데
그 혼은 어디로 돌아가셨나이까?
아아, 슬프고 슬프옵나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를 만경현(萬頃縣)의 북쪽에 있는 유앙산(維仰山)에 장사하였는데, 누구나 가서 그 무덤을 쓸고 술을 권해 제사 지내면 농사가 잘 된다 하므로 멀고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서로 뒤질세라 앞을 다투었으니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봉역(封域)은 완전하고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는다 한다.
그런데 스님은 늘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곡다(穀茶)」라 하면 마시고「술」이라 하면 마시지 않았다.
어떤 중이 잔치를 베풀려고 술을 거르는데 그 향기로운 술 냄새가 퍼져, 대사는 구장(鳩枕)을 짚고 가서 그에게 물었다.
「스님, 스님이 거르는 그것이 무엇인가?」
중은 대답하였다.
「술입니다.」
대사는 잠자코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다시 가서 물었다.
중은 아까처럼 대답하고 대사는 또 무료히 돌아왔다.
조금 있다가 대사는 또 가서 물었다.
그러나 중은 끝내 「곡다」라 하지 않고「술 거른다」대답했다.
대사는 끝내 실망하고 돌아왔다. 얼마 뒤에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철회로 술 거르던 중을 때렸다.
또 대사는 변산(邊山)의 월명암(月明壇)에 계셨다.
가을이 되어 스님네는 모두 행걸하러 떠나고 대사는 오직 그 시자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었다.
시자는 제사가 있기 때문에 속가에 가기 위해 미리 대사의 공양을 준비해 탁자 위에 놓아두고 사뢰었다.
「공양을 여기 차려 두었습니다. 공양 때가 되거든 잡수십시오.」
그 때 대사는 방장실(方丈室)에서 창을 열고 앉아 문지방에 손을 얹고 능엄경(楞嚴經)을 보고 있었다.
이튿날 시자는 암자로 돌아왔다.
대사는 어제 그 모양으로 앉아 계신데, 창문에 손이 찍히어 피가 흘렀지마는 손을 거둘 줄도 모르고 태연히 경만 보고 계셨고 탁자 위의 공양도 자시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시자가 절을 올리고 밤새의 안부를 사뢰자 대사가 말했다.
「너는 왜 제사 참례도 않고 빨리 돌아왔느냐?」
그것은「수능엄삼매」에 들어 방이 이미 지난 줄을 모르셨기 때문이었다.
밝은 밤이면 언제나 한 점 별빛이 멀리 동쪽 들 끝에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더니 그것은 전주 청량산 목부암(全州 淸凉山 木負駑)의 불등(佛燈)이었다.
대사는 곧 그리로 자리를 옮기고 그 목부암을 원등암(遠燈庵)으로 이름을 고쳤다.
그 땅은 본래 나한 도량(羅漢道場)으로서 16존자(尊者)는 늘 대사를 위해 사용하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등불 빛을 멀리 월명암에 비춘 것은 대사의 뜻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전주부(全州府)에 어떤 미미한 아전이 있었다.
그는 평소부터 대사와 잘 지냈는데 수백냥 흠포(欽浦)를 지고는 도망가기 위해 대사에게 와서 하직을 고하였다.
대사는,
「흠포를 지고 도망가는 것이 어찌 사내의 할 일이겠는가?
그러지 말고 집에 돌아가 몇 말 쌀을 마련해 가지고 와서 저 나한들에게 공양하면 반드시 좋은 도리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 아전은 시키는 대로 쌀을 가지고 왔다.
대사는 시자에게 명령하여 밥을 지어 나한들에게 공양하고 이내 그 관리에게 물었다.
「전주 부청에 혹 빈 자리가 없는가?」
「감옥의 형리(刑吏) 자리가 잠깐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봉급이 매우 박하고 할 일이 없는 자리입니다.」
「일이 없는 자리라 말고 빨리 가서 차청해 그 자리에 앉으면 30일이 지나지 않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 아전이 떠난 뒤에 대사는 주장자를 들고 나한당에 들어가 나한들 머리를 세 번씩 때리고 말하였다. 「저 아무 아전의 일을 잘 도와주어라.」
이튿날 밤에 나한들이 그 아전의 꿈에 나타나 꾸짖었다.
「그대는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직접 말할 것이지, 왜 우리 스승님께 아뢰어 우리를 괴롭게 하느냐?
그대만 같으면 돌아보지 않아도 좋겠지만 스승님 명령이라 부득이 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만은 돌보아 줄 것이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라.」
그 아전은 어떤 도움이 있을 줄 알고 자청해서 옥리가 되었다.
그러자 옥송(獄訟)이 계속 일어나 죄수가 뜰에 가득하였으므로 30일 안에 그 흠포를 다 갚고는 그 자리를 남에게 물려주었다.
얼마 안 되어 그 새 아전은 조그만 뇌물을 먹고 죄에 걸렸다 한다.
또 대사는 일찍이 혼자 길을 가다가 한 사미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낙수천(樂水川)가에 이르러 그 사미가 사뢰기를,
「스님, 내가 먼저 건너가서 그 얕고 깊은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하고 발을 벗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갔다.
대사도 그를 따라 옷도 벗지 않고 건너다가 물 속에 빠졌다. 사미는 빨리 와서 대사를 부축해 내었다.
대사는 나한(羅漢)의 놀림을 받은 줄은 알고 다음 게송을 외웠다.
「영축산(靈鷲山)의 어리석은 너희 16인 나한이여 낙수촌(樂水村)의 밥 먹기를 언제부터 그쳤는고?
그 신통과 묘용(妙用)은 따르지 못하지만 대도(大道)는 늙은 비구에게 물어 보라.」
대사는 만년에는 항상 전주 봉서사에 계셨다.
그 절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곡(鳳谷)선생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그 당시의 유현(懦賢) 이었다.

대사는 일찍부터 그 선생과 사귀었다. 한번은 대사가 그 선생에게 강목(綱目)을 빌어서는 바랑에 넣어 메고 갔다. 선생은 사람을 시켜 그 뒤를 따라가 보게 하였다.
대사는 가다가 우선 그 책 한권을 빼어 들고 읽어 보고는 땅에 던져 버렸다.
또 한권을 빼어서도 읽어 보고는 땅에 던져 버렸다.
이리하여 절 문에 이를 때까지 그것을 다 읽고 모두 땅에 던져 버리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들어가 버렸다.
그 뒷날 선생이 물었다.
「왜 빌려간 책을 다 땅에 던져 버렸는가?」
「고기를 다 잡았으면 통발은 버리는 것이다.」
선생은 책을 들고 그 내용을 물어 보았다. 대사는 하나도 틀림없이 다 알았다
선생은 어느 날 동비(童婢)를 보내어 대사를 음식으로 초대했다.
동비는 가다가 길에서 대사가 허공을 바라보며 배회하고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앞에 나아가 선생의 뜻을 전하였다.
대사는 동비를 보고
「너는 아들을 낳고 싶지 않느냐.」
고 하였다.
동비가 알아듣지 못하자 대사는
「네가 박복한 것을 어찌할 수 있느냐. 곧 돌아가 선생님께 아뢰라. 내가 곧 간다고.」
하였다. 동비는 가서 복명하였다.
선생은 기다리다가 대사가 오자 그 너무 더딘 것을 이상히 여겨 물었다.
「왜 그리 늦었는가?」
「마침 한 줄기 영기(靈氣)가 저 서쪽 끝에서 오르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매우 만나기 어려운 것이므로 그것을 붙잡아 어디다 쏟고 싶었으나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다.
또 그것이 좋지 못한 땅에 함부로 흘러 들어갈까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그것을 때려 멀리 허공 밖으로 물리쳐 버리고 오느라고 이렇게 늦어진 것입니다.」
대사는 길을 가다가 천렵(川獵)하는 소년들이 시냇가에서 생선국을 끊이는 것을 보았다.
대사는 끓는 솥을 내려다보다가 탄식하였다.
「이 좋은 고기들이 죄 없이 확탕(獲湯)의 고통을 받는구나.」
「스님은 이 생선국을 자시고 싶습니까?」
「나는 잘 먹느니라.」
「그러면 이 한 사라(沙羅)를 다 드릴 것이니 자십시오.」
대사는 구리쇠 사라를 들고 입에 쏟아 모조리 먹어 버렸다.
그러자 소년들은 모두 놀라워 하면서 물었다.
「부처님은 살생하지 말라 하셨는데 이것을 잘 자시니 어찌 중이라 하겠습니까?」
「죽인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다 살려 줄 수 있다.」
드디어 스님은 옷을 벗고 물을 등지고 앉아 설사를 했다.
그랬더니 무수한 생선들이 항문으로 쏟아져 나와, 마치 봄 물결을 탄 듯 기세 좋게 내려가면서 번쩍번쩍 물위에 어지러이 뛰놀았다.
대사는 그 물고기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좋은 물고기들아, 지금부터는 멀리 저 강이나 바다에 가서 놀고, 부디 미끼를 탐하여 다시는 확탕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라.」
소년들은 모두 탄복하고 그물을 걷어 올렸다.
대사는 시자를 불러
「이 소금을 봉서사 남쪽 부곡(婦谷)으로 가져가라.」
「가져가서는 누구에게 줍니까?」
하고 시자가 묻자 대사는
「거기 가면 저절로 알 것인데 구태여 물어서 무엇 하니?」
하신다. 시자는 소금을 가지고 재를 넘어 부곡으로 내려갔다.
그 때 사냥꾼 몇 사람이 마침 노루 고기를 회해놓고 소금을 생각하면서 먹지 않고 앉아 있었다.
시자는 소금을 그들 앞에 놓았다.
그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반드시 저 옥(玉-진묵) 노장이 우리 배고픔을 생각해 보내주신 것일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부처님은 골짝 골짝이 있다더니 그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어느 날 대사가 물을 찾았다.
시자가 더운 뜨물을 갖다 드리자 대사는 그것을 받아두어 모금 머금어 동방을 향해 뿜었다.
그 뒤에 들으니 그 때 합천 해인사(陝川 海印寺)에 화재가 일어나, 온 절이 다 타게 되었는데 갑자기 한 떼 소나기가 서방에서와 쏟아지면서 그 불을 껐고, 그 빗방울은 희뿌연데 무엇이나 물으면 얼룩이 졌다 하였다.
그리고 해인사제 화재가 있는 날이 바로대사가 뜨물을 뿜은 날이라 한다.
대사는 일찍이 상운암(上雲庵)에 계셨다.
그 제자들이 양식을 구하러 멀리 나갔다가 월여 만에 돌아왔더니, 대사 얼굴에는 거미가 줄을 쳤고 무릎 밑에는 티끌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티끌을 쓰고 거미줄을 걷은 뒤에 인사를 드렸다.
대사가 말하였다.
「그대들은 왜 그리 빨리 돌아왔느냐?」고
대사는 일찍이 대원사(大元寺―전주)에 계셨는데 공양할 때마다 오직 밀기울을 물에 타서 자셨다.
그래서 대중 스님들은 그 맛이 없음을 싫어하여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더구나 그것을 더럽게 여겼다.
한번은 어떤 중이 밥 바루를 가지고 허공에서 내려와 대사에게 드렸다.
대사는 그에게
「밥만 보냈으면 그만이지 구태여 친히 올 것은 무엇인가?」
「소승은 현재 해남 대둔사(海南 大屯寺)에 있습니다. 막 밥을 먹으려 하자 바루가 저절로 움직이기에 이상히 여겨 붙들었더니, 어떤 신력 (神力)에 끌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였다. 대사는 비로소 그 공양을 청한 까닭을 말하였다.
그 중은 매우 신기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아침저녁의 공양을 자청하고 예배한 뒤에 하직하고 나가 삽시 간에 그 절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4년 동안 밥 바루가 오고 가고 하였다.
그 때 대사는 대중 스님에게 말하기를
「너희 이 절은 장차 7대의 재앙을 만나리라.」
하였는데 과연 대원사는 지금까지 가난하다 한다.
천계(天啓) 임술년에 완부(完府-지금전주)의 송광사(松廣寺)와 홍산(鴻山-지금 흥성)의 무량사(無量寺)에서는 동시에 소상(塑像)을 조성하게 되어 대사를 증사(證師)로 청하였다.
그러나 대사는 어느 쪽에도 가지 않고 각각 표물(表物) 하나씩을 주면서 중단(證壇)에 두어 운괌(邏觀)을 표(表)하는 데에 쓰게 하고는
「다만 이것을 쓰면 그 두 절의 존상(尊像)은 반드시 잘 이루어질 것이니 그 뒤로는 부디 함부로 개도(改塗)하지 말라.」
하고 또 훈계하였다.
「더구나 무량사의 화주스님은 점안(點眼)하기 전에는 산문(山門) 밖에 나가지 말라.」
그런데 흥산 사람으로서 3천금을 내어 3촌의 소상 비용을 혼자 담당한 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 불사회향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기 때문에 화주스님은 그를 기다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산문 밖에까지 나갔다가 갑자기 어떤 갑사(甲士)에게 피살되었다.
대사는 일찍이 다음 게송을 읊었다.
「하늘이 이불, 땅 자리에 산을 베개로 삼고
달 음불, 구름 병풍에 바다를 술로 삼네.
크게 취해 그대로 일어나 춤추니
긴소매에 곤륜산(崑崙山)이 걸리도다.」

그리고 하루는 시냇가를 거닐다가 물속의 자기 그림자를 가리키면서 시자에게
「저것이 바로 석가 부처님의 그림자이니라.」
「저것은 스님 그림자입니다.」
「너는 다만 스님의 가짜만 알고 석가의 진짜는 모르는구나.」
그리고 곧 지팡이를 메고 방에 들어가서는 가부하고 앉아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가리라. 그대들은 무엇이나 물어 보라.」
「스님께서 돌아가신 지 백년 뒤에는 그 종승(宗乘)을 누가 이어 받겠습니까?」
대사는 잠자코 한참 있다가,
「무슨 종승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선은 정(靜) 장로에게 부촉한다.」
하고, 편안히 세상을 떠나시었다.

<一玉禪師集> <법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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