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제도한 상좌

스승을 제도한 상좌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보은설화

• 주제 : 보은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경상도
• 참고문헌 : 한국사찰전서

임진왜란 때 동래 병어사에 명학이란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원래 욕심이 많아 신도들의 재물을 탐내어 수도보다는 재물을 모으는 데만 눈이 어두웠다.
어느 날 학스님이 지금의 화정, 당시 조선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던 소산 앞을 지나다가 조그만 초가집에 서기가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님이 옷깃을 여미고 그 집에 들어서니 옥동자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토방 앞에 다다른 스님은 밖에서 기침을 하고는 산모를 향해 말했다.
「태어난 아기는 불가에 인연이 깊은 옥동자입니다.
그러니 잘 길러 주시면 몇 년 후 내가 와서 데려가겠습니다.」
아기를 낳느라 힘이 빠져 기진맥진한 산모는. 아기가 불연이 있다는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불가에 인연이 깊은 아이라면 당연히 부처님 앞으로 가야지요. 하오나 밖에 계신 어른은 뉘신지요?』 「소승 범어사에 있는 명학이라 합니다.」
「그럼 언제쯤 아기를 데리러 오실런지요.」
「10년 후에 들르겠습니다.」
산모는 명학스님의 말에 순순히 응낙했다.
그 후 10년이 지나 명학스님은 동자를 범어사로 데리고 와서 상좌로 삼았다.
어린 상좌는 아주 영특하여 잔심부름을 잘하고 부처님께 예불도 곧 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학스님은 동자에게 뒷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고 시켰다.
저녁때가 되어 돌아온 상좌는 빈 지게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어디서 놀다가 빈 지게를 지고 들아 오느냐?」
명학스님은 불호령을 내렸으나 어린 상좌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스님, 그저 놀다가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제가 수풀을 헤치고 나뭇가지를 낫으로 베었더니 그 나뭇가지에서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 내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도저히 무서워 나무를 벨 수가 없었지요.」
상좌의 말에 명학스님은 노발대발하여 호통을 쳤다.
「원 이린 고약한 놈을 봤나 어디서 그런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을 배웠느냐?
나뭇가지에서 피가 흐르다니! 나를 속이려거든 내 앞에서 당장 물러가거라.」
상좌는 하는 수 없이 그길로 범어사를 떠나 금강산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금강산 영원동에 가서 세속을 영원히 끊고 오직 한마음으로 정진한 상좌는 크게 깨달아 영원조사가 됐다.
스님은 흰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과 흐르는 시냇물에 마음을 자적하게 지냈다.
스님이 30세가 되던 어느 날 선정에 들어 스스로 법열을 즐기고 있는데 홀연히 십왕동에서 범어사 옛 스승의 사후 죄를 묻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스님은 출정하여 스승을 구하려고 신통력으로 명부에 이르러 그 원인을 알아보았다.
그 이유인즉 스승은 생전에 탐심으로 재물을 모으고 선한 일이라곤 조금도 하지 않아 죽어 구렁이의 과보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영원스님은 곧 범어사로 향했다.
범어사에 도착해 보니 큰 구렁이가 고방에 도사리고 앉아 팥죽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원스님은 여정도 풀지 않고 즉시 고방으로 들어가 구렁이를 향해 정중하게 절을 했다.
그 구렁이는 이상하게도 팥죽을 잘 먹어 대중은 구렁이에게 늘 팥죽을 쑤어 주면서 극진히 대접했다.
구렁이가 팥죽을 다 먹길 기다린 영원스님은 얼마동안 독경을 하더니,
「스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어서 해탈하시어 승천하시옵소서.」
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구렁이도 꿈들거리며 영원스님을 따라 나가는 것이 아닌가.
구렁이와 함께 시냇가에 이른 영원스님은 구렁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업신을 얻게 된 것은 전생에 탐심으로 재산을 모은 까닭이니 이제부터 모든 인연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방하 하십시오.」
말을 마치는 순간 영원스님은 옆에 놓인 큰 돌을 들어 구렁이를 내리쳤다.
바로 그때였다.
숨져 가는 구렁이의 몸에서 새 한마리가 나와 영원스님 품에 안겼다.
스님은 다시 금강산으로 향했다.
길 가는 도중, 이 새는 암수의 짐승이 짝을 지어 노니는 것을 보면 그곳으로 날아가려고 퍼득거려 스님은 이를 막느라 무척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날이 어두워 인가를 찾던 영원스님은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되었다.
그날 밤 스님은 품안의 새를 주인에게 맡기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지금부터 열 달 후에 당신들 내외에게 옥동자가 생길 것이니 잘 길러 주기 바랍니다.
그 아이는 불가에 인연이 깊으므로 10년 후 내가 다시 와서 데려가겠소.」
그 후 10년이 지난 뒤 영원스님은 다시 이집에 찾아와 동자를 절로 데려갔다.
동자승은 영원스님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불도를 닦아 차츰 스님의 풍모를 갖추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원스님은 동자승 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스님, 저를 모르겠습니까?」
「아니, 스님 어찌된 일이십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동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스님, 저는 본래 스님의 제자였습니다. 정신을 차려 저를 똑똑히 보십시오.」
영원스님이 목메인 소리로 말할 때 동자승은 불현듯 전생을 보았다.
동자승은 자신의 전생을 거울 보듯 보고 영원조사의 도력을 환히 알면서도 구렁이인 자기를 죽였다는 그 원한의 숙업을 어쩌지 못해 어느 날 밤 그만 일을 저지르게 됐다.
영원스님보다 뒤늦게 자리에 들기 위해 살그머니 방문을 들어온 동자승의 손에는 도끼가 들려져 있었다. 영원스님이 기척이 없는 것으로 미뤄 깊은 잠에 들었을 것이라 믿은 동자승은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영원스님 곁으로 다가가 도끼를 내리쳤다.
그 순간, 벽장문이 확 열리면서
『스님, 이제 숙업은 다 소멸됐습니다.』
동자승은 들었던 도끼를 힘없이 놓았다.
그 뒤 동자승은 착한 일을 하고 바르게 깨달으니 그가 곧 우운조사라고 한다.
스승을 제도한 영원조사는 전국을 운수행각하며 제자를 제접하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지리산에 들어가 절을 세우니 그 절이 바로 부용, 청하, 청해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이 주석한 영원사다.

<韓國寺刹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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