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곡화상의 보임

남곡화상의 보임

[ 南谷和尙-保任 ]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효선설화

• 주제 : 효선
• 국가 : 한국
• 지역 : 전라도
• 참고문헌 : 속편영험설화

도(適)란 깨닫기도 어렵지만 깨달은 뒤에 그것을 지켜 나가기도 어려운 것이다.
옛날 남곡스님이라 하는 분이 지리산 천은사에 살고 있었다.
일찍이 출가하여 한 소식을 얻었다.
소문난 스님으로 늘 실상사(實相寺)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공부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실상사를 갔다가 안팍으로 거의 백리가 넘는 벽소령 (碧少嶺)을 넘어가는데 소금 한 가마니 정도를 짊어진 소금장수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산은 높이가 1천미터가 넘는 곳이라 소금장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이 차서 헐떡거리기 시작하였다.
짐이라는 것은 지고 내려가기도 힘드는 것인데 하물며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는데야 더 말할 것 있겠는가.
남곡스님은 혼자 같으면 힘이 좋은 분이라 빈 몸으로 설렁설렁 걸어 훌홀 날아올라가겠지만, 소금장수가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애처롭게 올라가는 데야 혼자 그냥 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님은 속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가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불쌍하게 생각하고 말을 건네었다.
「여보, 영감 짐이 무거우신 것 같은데 내가 좀 지고 갈까요?J
「이 놈의 소금이 팔아봐야 몇푼어치 되지도 않으면서도 사람의 골만 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주신다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J
「고맙기는 뭐가 그러 고마울게 있습니까. 어차피 나는 빈 몸으로 가는 사람인데-」
「그러면 알아서 하시구려.」
하고 영감님이 그만 소금짐을 풀어 놓는다.
스님이 지게를 지자,
「스님 미안합니다.」
「별말씀 다 하십니다. 내가 영감님보다야 나이로 보나 기운으로 보나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하고 핑핑 걸어갔다.
영감님은 발걸음도 가볍게 따라왔다.
얼마쯤 올라가다 보니 남곡이라고 별 사람일 수가 없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그렁그렁 하더니 조금 올라가다보니 등에서 빗물 같은 땀이 쏟아졌다.
코에서는 단 냄새가 나고 입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물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산봉우리에 무슨 물이 있겠는가. 얼마쯤 더 가야만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속히 그곳에 가서 물을 마실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그만 돌뿌리에 발가락이 채여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는 것까지도 좋은데 넘어지는 바람에 소금 가마니가 굴러 떨어져서 언덕배기로 굴러갔다.
그를 본 소금장수가 큰 말로 소리쳤다.
「앗, 저런 변이 있나-」
소금장수의 벼락같은 소리에 넘어졌던 스님은 아픈 것도 생각할 겨를 없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 소금섬이 걸려있는 곳까지 내려가서 가마니를 챙겨지고 왔다.
소금섬이 풀어져서 약간 흩어졌으므로 그것까지 마저 내려가서 옷자락에 쓸어 담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 영감 뻑뻑한 말씀 좀보게,
「여보, 대사. 소금섬이 그만하기 다행이지 아주 쏟아져 버렸더라면 어떡할 뻔하였겠소.」
「미안합니다. 어쩌다 잘못하여 그리되었으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소금장수 영감은 막무가내였다.
「여보, 대사 잘못하였다고만 하면 그만이오. 소금이 다 쏟아졌더라면 어쩔 뻔했어.」
「소금섬이 아주 터졌다면 큰일 날 뻔했지만 그리되지 아니 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니오.」
「뭐라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남의 물건을 짊어졌으면 조심을 해야 할 일이지, 소금까지 쏟아놓고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어디서 쓰는거요.」
그렇지만 스님이 생각해 보니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의 소금만 귀한 줄 알았지 사람 중한 것은 도통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람 같은 사람이라면 소금은 그만두고 우선 다치지나 않았느냐고 인사를 할 일인데, 그런데 스님 생각과는 아주 딴판으로 또 큰소리를 친다.
「이게 어디서 굴러먹다온 중놈이여, 그래도 변명을 하고 대들어!」
「당신이 대들었지 내가 대들었소. 나는 미안해서 자꾸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소.
사람이란 혹 실수를 할 때도 있지 않겠소. 언제고 잘 한다고만 장담할 수는 없지 않소.
그러나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라 너그러이 용서하시오. 짐이나 다시 지고 넘어갑시다.」
그런데 그 영감은 끝끝내 고집을 부렸다.
「이렇게 빽빽한 양반은 처음 보았네. 이미 잘못한 것을 아무리 추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재수가 없어서 그리 되었으니 이해 하십시오‥‥」
「뭐, 이자식이 나보다 빽빽한 양반이라고 건방진놈 같으니라고, 너 이놈, 맛좀 보아라.」
하면서 대뜸 주먹을 쥐고 뺨을 후려 갈겼다.
「아이쿠!」
하고 남곡스님이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볼때기를 쓰다듬으려 하자 소금장수는 아주 화가 난 모습으로 다가서서 이뺨 저뺨을 마구치고 멱살을 잡고 발길로 차고 아무데나 두둘겨팼다.
남곡스님은 하도 어이가 없어 우두커니 방어만 하고 섰으니 아주 바보인 줄 알고 이제는 큰 돌멩이를 들어서 머리에 치려고 달려들었다.
스님은 가만히 그의 양손을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워낙 기운이 장사라 두 손을 점점 움켜쥐니 돌맹이가 저절로 땅으로 떨어졌다.
남곡스님이 타일렀다.
「피차 이러다가는 길도 가지 못하고 고생만 할 것 같소.」
「그러면 어떡하자는 거냐?」
「내 손을 놓아라.」
손을 놓으니 그는 두말 하지 않고 소금짐을 걸머지고 씩씩거리면서 고개 길을 올라갔다 남곡스님은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생각하였다.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로고, 저런 인생과 같이 사는 처자식이 얼마나 따분하고 속이상할까.」
이렇게 생각을 다지면서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따라갔다.
그런데 소금장수는 또 얼마를 올라가지 아니하여서 비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기 시작하였다.
「힘드시죠.」
「힘듭니다.」
「아까는 내가 실수를 하여 소금 짐을 넘어뜨렸으니 이번에는 조심조심하여 져다 드리리다.」
하니 소금장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만 소금짐을 부려놓고 뚫어지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곡스님은 조금도 불쾌한 마음이 없이 그것을 짊어지고 이제는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발자국에 맞추어 염불하면서 천천히 걸어갔다.
얼마쯤 오다보니 헤어질 곳이 되었다.
지게를 부려놓고,
「안녕히 가십시오.」
인사하니 그 때에야 물었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시오.」
「나는 천은사에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세상에 도승이 있다는 말만 들었지만 아직까지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에야 비로소 도승을 뵈온 것 같습니다. 미처 내가 속이 없어 스님에게 행패를 부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내가 실수한 것이 잘못이지 영감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스님 같은 도인에게 행패를 부려 다음 과보가 두렵습니다.」
「내가 무슨 도승입니까. 이렇게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일 뿐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에게나 힘을 따라 자비를 베풀어라 하셨습니다만, 나는 그러한 마음도 없이 하였으니 뒤에 과보가 올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고 서로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그는 집에 와서 처자 권속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나는 오늘 부처님을 보았다. 2천여년전 부처님이 인도에 나섰다 하더니 그가 죽어 우리나라에 태어난 듯했다.」
하며 그간의 모든 사정을 말하고 온 가족이 함께 떡과 엿을 빚어 그 스님을 공양코자 천은사를 찾아갔다.
스님은 그때도 똥통을 지고 밭에 나가 채소를 가꾸고 있었다.
「어허, 소금장수 영감님이 웬일이오.」
하고 반겨 맞아 주자 아내와 남편 한 아들과 두 딸이 길거리에 넙죽이 엎드려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 그를 절로 모셔 크게 공양한 뒤 며칠을 두고 그의 뒷일을 보아주고 떠났다.
그제서야 천은사 스님들도 남곡이 실로 숨은 도인임을 깨달고 큰 스님대접을 하게 되었다 하니,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도 도, 도를 찾는 사람은 않고
도를 행하는 사람은 적도다
도가 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를 행하는 사람에게 있으니,
사람들아, 도를 입으로 말하기에
앞서 도를 몸으로 행할지니라.

<속편 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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