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스님을 사모한 서은스님

옛스님을 사모한 서은스님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효선설화

• 주제 : 효선
• 국가 : 중국
• 시대 : 송나라
• 참고문헌 : 중국고승전

중국 송나라 때의 일이다.
항주 영명사(永明寺)에 연수지가(延壽知覺)선사가 있었다.
이 스님은 공부도 높고 인자하기로 유명하였다.
출가하기 전에 어느 고을의 태수로 있었는데 한재를 만나 가을은 되었어도 거둘 곡식이 없어서 백성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였다.
그것을 본 태수(太守)는 정부에 보고하여 결재를 받기 전에 창고를 열고 비상용의 곡식을 풀어 골고루 나누어 주어 백성을 건지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정부의 결재를 받아 실행하는 것이 순서였으나 그렇게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는 간신이 있어 조정의 허가도 없이 제 마음대로 관곡을 소모한 것은 반드시 그 이면에 부정 지출이 잠재하여 공용을 빙자하고 사용을 하였다는 거짓상소를 하여 당시 황제는 태수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일방으로는 그가 군자요, 정직한 사람이므로 오직 백성을 속히 살리기 위하여 급히 서두르느라고 수속절차를 밟는 것이 늦은 것이요, 다른 허물이 없을 것이라고 간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감은 비밀리에 명령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되 형장에 끌고 가서 교수대에 목을 달아도 만일 태연자약하여 아무 저항하는 빛과 두려워하는 빛이 없거든 집행을 중지하고, 만일 두려워하고 근심스러운 얼굴빛을 하거든 극형에 처하라.」
고 하였다.
금부도사가 상감의 명령을 받고 그를 형장에 끌고 나아가 문초해도 그는 아무 변명의 말이 없고, 목을 베이려고 교수대에 달아도 아무런 공포심도 없고 수심도 없고 태연자약하였다.
죄를 지었더라도 오직 백성을 위하여 지은 것이요. 자기 양심에는 죄 될 것이 없을 뿐더러 백성을 위하여 재물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인것 같아, 집행을 중지하고 조정에 연유를 보고하였더니 상감은 태수에게 상을 주고 도리어 벼슬을 높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인생무상을 느끼고 벼슬을 버리고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그는 늦게 중이 되었으나 각고근면, 경학과 선학을 공부하여 일약 대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본시부터 문장가였으므로 종경록(宗鏡錄) 100권과 유심결(惟心訣) 1권과, 심부적(心賦賊) 4권과, 산거시집(山居詩集) 1권을 남겼는데 모두 주옥같은 문장이었다.
이 스님은 본래 경학자요, 선학자였지만, 말년에는 선종과 정토종의 겸수종으로 실천하되 지성으로 염불을 하여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원하였다.
스님의 저서에 보면,
「참선만 하고 염불을 안 하면 열사람 중에 아홉 사람은 잘못하고, 참선은 못해도 염불만 지극히 하면 만인이 극락을 가고, 참선과 염불을 같이 하면 호랑이에 뿔난 것과 같고, 참선도 염불도 모두 아니하면 구리로 만든 평상에 못 박히고 쇠기둥에 매달리는 지옥으로 가게 되느니라.」
하였다.
이것만 보아도 스님이 얼마나 참선보다 염불왕생 정토를 주장한 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스님은 평상의 생활 중에도 염불소리를 그치지 아니하였고 누워도 서향을 하고 앉고 동향을 하고 가는 경우에는 얼굴은 서향을 하였다.
이와 같이 스님의 덕행과 공부와 신심이 놀라웠던 까닭으로 언제든지 일백여명의 제자가 모여 들끓었다. 그러므로 스님은 그 많은 제자를 거느리기 위하여는 당신부터 여섯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염불을 하고 독경도 하는 동시에 제자들에게도 그와 같이 시켜서 노는 틈을 주지 아니 하였다.
그런데 그 제자들 가운데 서은(西隱)이라는 중이 있었다.
그는 맨 처음에 연수스님을 찾아왔을 때에는 굽신 굽신하면서 연수선사의 가르침을 잘 받고 대중의 규칙도 잘 지키더니, 차츰 반발심을 일으키고 연수선사의 하는 일이모두 형식적이요, 위선적이라 하며 참선을 하다가 타락한 스님이라고 비방을 하고 제멋대로 딴 방에 가서 잠이나 자고 대중의 규칙을 지키지 아니했다.
유나스님과 입승스님이 몇 번이나 나무래고 타일러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을 취하려 들고 대중의 규칙을 지키기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 분열을 시켜놓고 이간중상을하여 서로 싸우게 하였다.
그래서 고요하던 대중이 불안하여 살 수가 없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때에는 동구 밖에 나가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여자들과 희롱을 하다가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그러므로 서은이라는 중 때문에 날마다 대중이 골치를 앓고 있었다.
총림규칙에 의하여 이러한 따위는 물아내면 그만인데, 대중이 서은의 허물을 들어 방장화상인 연수선사에게 고하면,
「그러한 악인을 우리가 선도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총림이란 것은 그러한 악인을 제도하는 장소가 아닌가? 그럴수록 더욱 더 잘 가르쳐보고 타일러 보게. 소와말도 가르쳐서 부리고 곰도 재주를 가르쳐서 재주를 피우게 하는데 사람이야 짐승보다는 나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 누르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은은 입승의 말을 종시 듣지 않고 대중을 우습게 여기고 날이 갈수록 악행만 더하였다.
더 두고 볼 수 없어 대중은 서은을 쫓아내자고 결의를 하고 연수사에게 결재를 구하였다.
연수사는 서은을 불렀다.
「내가 부덕하여 자네 같은 사람 하나를 올바로 인도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물러가게 함은 유감일세.
그러나 대중의 의사가 자네와는 동거할 수가 없다 하니 어찌하겠나. 그런 즉 나보다 더 높은 덕망과 수행이 놀라운 선지식 스님을 찾아가 보세. 만일 나만한 사람도 만나볼 수 없거든 다시 찾아오게.
그렇더라도 대중이 참회를 받고 용서를 해 줘야 나도 허락하지.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일인즉 그리 알고 자네는 오늘부터 내 곁을 떠 나가게.」
연수선사는 이와 같이 서은에게 부드러운 말로 퇴거명령을 내렸다.
서은도 하는 수 없이 영명사를 등지고 떠나 버렸다.
그 뒤에 서은은 여러 곳의 총림을 찾아다니면서 이름난 선지식을 방문하여보았으나 연수선사와 같은 선지식은 얻어 볼 것이 없었다.
선지가 있으면 성질이 사납고, 성질이 부드러운 이는 경학과 선지가볼 것이 없었다.
연수사는 그들에게 비하면 과연 생불이었다.
막상 연수사를 모시고 있을 때에는 몰랐다가 나오고 보니 다른 스님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서은은 연수사가 다시금 그리워졌다.
「내가 그 스님의 회상에 있을 적에 무슨 악마에게 사로 잡혀서 그러한 비행을 하고 쫓겨났던고‥‥‥」
하고 참회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옷깃을 적시었다.
그래서 그는 전단향 나무를 구하여 심력을 경주해가며 연수스님의 목상(木像)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랑에 넣어 걸머지고 다니며 때를 맞추어 예배도 하고 공양하기를 마지아니하였다.
그런데 전부터 서은의 존경을 받던 도반인 지선(智善)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가 하루는 길에서 서은을 만났다.
「아, 이게 서은이 아닌가?」
「그렇소. 스님은 지선대사가 아니십니까?」
「참, 오래간 만이오 그래 영명사에서 나온 후 어디로 다녔소?」
「천하의 강산을 누비고 돌아다녔지요.」
「그러면 선지식 스님네도 많이 친견하셨을 터 인데‥‥‥」
「그야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내가 박복하여 연수스님을 버리고 나왔지만, 그 스님 같은 어른은 다시 본 일이 없습니다.」
이같이 주고받고 이야기를 하며 어떤 독살이 같은 절로 가서 날이 저물었으므로 동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은은 바람 속에서 무슨 목상을 하나 꺼내놓고 예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선이
「그게 누구요.」
하고 물었더니, 연수사라고 하는 것이었다.
지선이 보니까 조금도 틀림없는 연수선사였다.
지선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서은은 지나간 경과와 추억을 말하며 영명사에서 나온 뒤로는 아주 개심을 하고 연수사를 잊을 수 없어서 조각을 하여 모시고 다니면서 이렇게 참회하고 예배하고 공양을 올린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고 들은 지선도 감격 하여,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스님회상으로 돌아 가는게 좋지 않겠소?」
「돌아갈 생각은 굴뚝같지마는 염치가 있어야지요. 더구나 다시 받아 주실지도 알 수 없는 일이구‥‥‥」
「아무 걱정 말고 나와 같이 돌아갑시다. 이 목상을 스님에게 보이고 경과를 말씀드리면 스님도 감심하시고 용서하실 것입니다.」
지선은 이와 같이 설득하여 서은을 데리고 영명사로 돌아갔다.
대중은 서은을 보고모두 코를 찡그렸다. 그리고
「망할 녀석이 또 왔으니 큰일이로군.」
하고 수군거했다.
지선은 서은을 연수사에게 데리고 가서 예배한 뒤에 서은의 과거를 물어 이야기하고 아주 개심이 되었으니 회상에 다시 있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다.
연수선사도 감심하신 듯이,
「그렇다면 나의 목상을 내어 놓아라.」
하시었다.
서은은 기뻐하며 목상을 바랑에서 꺼내 올리더니,
「아, 꼭 날 닮았다. 기술면으로 보아서는 나무란 데가 없으나, 이것만 가지고서는 나는 서은을 신용할 수가 없네. 나는 자네가 알다시피 누워도 서쪽으로 눕고 앉아도 서쪽을 향해 앉고 걸으면서도 서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목상이 참으로 나를 위해서 조각한 것이라면 나와 같이 동향으로 앉혀도 서쪽으로 돌아앉고 남향을 향해 앉아도 서쪽으로 돌아앉아야 과연 나를 위한 목상이라고 할 것이니 어디한번 그런가 시험을 해보게나.」
하였다. 스님의 이 말씀은 지선과 서은에게 대하여 청천벼락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시험하여 본 일도 없고 또는 그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연수선사에게서 그야말로 위선(僞善)이 폭로되고 아주 쫓겨나는 꼴이 되고 마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못한다고 앙탈할 수도 없어서 속으로 침이 마르도록 축원을 하며 조심조심히 목상을 동쪽으로 향하여 앉혔다. 그랬더니 목상은 껑충 뛰며 서쪽을 향하여 앉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남향으로 해도 서쪽으로 돌아앉고 북향으로 향해도 서쪽으로 돌아앉는 것이었다.
지선과 서은은 그간에도 등골에 땀이 흘렀다.
「목상이 돌아앉는 것을 보니 서은은 개심한 것이 분명하도다.」
하고 선사는 입승과 원주를 보더니,
「우리 대중에 이렇게 할 사람이 또 있겠는가? 사람은 일시에 나뿐 사람이라도 참회하고 개심만 하면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니, 그리 알고 이 사람을 다시 대중에 들게 하라.」
고 훈시 하였다.
서은은 그 뒤로부터 대중의 모범이 되어 후일에는 연수선사의 대를 이어 크게 불법을 선양하였다.

<中國高僧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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