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쟈타샤의폭력

아쟈타샤의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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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우지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근본설일절유부비내파승사

석존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악사(惡師) 데바닷다의 교시를 받은 아자타샤츠 태자는 어느날 갑자기 부왕의 심궁(深宮)에 칼을 찬 채로 무서운 혈상을 하면서 들어왔다.
사랑하는 태자가 갑자기 들어온 것을 보고 부왕은 깜짝 놀라면서,
『너는 무엇 때문에 칼을 차고 거기 서 있느냐?』
라고 물었다.
『저에게는 불평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영토가 있으나, 저에게는 영토도 없고 봉리를 조금도 주지 않으십니다. 저에게도 봉리를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버님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천하를 뺐겠습니다.』
『그러냐, 그렇게 되었구나. 그것은 나빴다. 그러면 센바성을 너의 봉리로 주겠다.』
부왕으로부터 하나의 성의 지배권을 분할 받은 그는, 체한 것이 한꺼번에 내려간 것처럼, 대단히 기뻐하여 춤을 추면서 그 길로 데바닷다의 정사를 방문했다.
거창하게 들어온 데바닷다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몹시 기쁘신 모양인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이렇게 물었다.
『오늘 아버지로부터 센바성을 얻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자유롭게 지배를 해서 성자에게도 충분한 공양을 할 수 있게 되어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자는 그 센바성만 손에 넣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러한 조그마한 일에 만족하시면 안됩니다. 더 많은 수입의 증식과 더 큰 지배권을 얻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데바닷다는 다시금 태자의 나쁜 마음을 불에 기름을 치듯이 꾀었다.
센바성으로 간 태자는 가혹한 세금을 징수하고 무섭게 혹사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굴어서 고통을 주는 것이 막심하엿다.
성주의 중세가 너무나 가혹해서 이를 견디어 내지 못하는 어떤 자는 왕사성으로 돌아가고, 그밖의 백성들도 제각기 외국으로 이주를 해서 남는 자가 극히 적어졌다. 성하에 남은 백성들은 어느날, 서로 상의를 해서 국왕에게 몰려가서,
『대왕이여, 태자님은 우리들에게 중세를 가하고, 혹사를 시키며 못살게 굴면서 우리들을 가혹하게 합니다. 그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말았습니다. 아무쪼록 대왕의 힘으로서 태자님의 비법을 중지시켜서 우리들 백성의 고통을 제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호소했다.
이러한 백성들의 직소(直訴)를 들은 왕은 즉시로 태자를 불러서는,
『너는 백성들을 몹시 괴롭히고 있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
이렇게 다그쳤다.
『병사를 교육할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국방상 군비 확장을 위해서 중세를 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만큼 군비가 필요하다면, 왕사성을 제외한 마갈타국의 전부를 너의 지배에 맡기겠다.』
태자는 이러한 봉지(封地)의 증가를 얻게되어 또다시 악사 데바닷다에게로 가서는,
『성자, 저는 이번에 왕사성 이외의 전역을 아버지로부터 받았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이렇게 보고를 했다.
『그것은 정말 잘 된 일입니다. 더욱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태자는 또다시 마갈타국 전토의 주민들에게 이전보다도 더한 중세와 노역을 부과해서 백성들을 괴롭혔다. 중세에 허덕이는 주민들은 이 일을 국왕에게 직접 호소해서 중세의 철폐를 단행해줄 것을 소청했다. 태자의 치세(治世)가 좋지 않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제도의 직소에 접했던 부왕은 또다시 태자를 불러서,
『어찌하여 너는 마갈타국 전체의 백성들을 괴롭히느냐?』
라고 책망을 했다.
『병사의 수가 대단히 많기 때문에 중세를 가하지 않으면 군비를 유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곤란하다면 단지 창고 하나를 남기고 그 밖의 것은 왕사성에 있는 것까지 모조리 너에게 주겠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기꺼이 받겠습니다.』
이리하여 부왕의 영토 거의 전부를 수중에 넣은 아자타샤츠 태자는 또 데바닷다에게로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그것은 잘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태자여, 고장(庫藏)을 소유하여야만 비로서 국왕의 자격이 있는 것이므로 그 부왕이 소유하고 있는 창고까지도 당신의 수중에 넣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데바닷타는 또 다시 나쁜 지혜를 태자에게 가르쳐 주었다.
태자 자신은 데바닷다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 그것이 극히 순조롭게 자기의 권리를 확장하게 되므로 두말 없이 그를 따라 또다시 그는 왕사성의 백성들에게 고의적으로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여 그들을 괴롭히기로 했다.
이 때, 왕사성의 백성들을 위시해서 센바성, 마갈타국 등의 주민들은 태자의 중세에 견디지 못하고, 이대로 방치해 두면 쓸데없이 많은 동포가 굶어죽는 수 밖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 주민들은 몰래 왕궁으로 가서,
『태자는 우리들 백성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괴롭히고 있습니다. 태자의 악정은 그야말로 언어도단해서 우리들은 하루도 인종(忍從)할 수가 없습니다. 대왕의 힘에 의해서 이 고통을 구해 주시기를 간절히 애원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눈물로써 대왕에게 호소했다.
그 성격이 대단히 연민의 정이 깊고, 정법을 가지고 국가를 다스려 왔던 왕은, 이 사랑하는 아들 아쟈타샤츠의 폭정을 들을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고치는가에 대해서 항상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왕은 이대로 언제까지나 방치해 둘 수도 없고 해서, 태자를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영토의 전부를 너에게 주었는데도 너는 어찌해서 백성들을 괴롭히느냐. 백성들은 모두가 나의 적자(赤子)이므로 그들에게 안온하고 쾌락을 주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면서 상의를 했다.
『저에게 고장(庫藏)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으므로 나를 시중드는 궁인을 제외한, 그 밖의 고장을 네가 사용하도록 맡기겠다.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도록 하여라.』
이렇게 해서 부왕으로부터 고장의 전부를 탈취한 태자는 성격이 원래 포악(暴惡)하였기 때문에, 탈취한 고장에도 만족할 수가 없어서 다시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러한 태자의 폭정하에 갖은 고초를 다 겪은 백성들은 다시 왕궁으로 가서 궁상을 호소했다.
왕은 태자를 불러서,
『나는 네가 바라는 것을 전부 주었는데도 아직도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모양인데, 어찌된 일이냐?』
이와 같이 태자에 대한 비판을 귀로 듣고 근심을 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부왕의 이야기를 들은 태자는 몹시 언짢아하면서 화를 냈다.
그래서 좌우의 신하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만약에 크사트리아왕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 비웃는 자가 있다고 하면 무슨 죄로서 이를 처벌하면 좋은가?』
라고 물었다.
『그것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대답했다.
『그런 나쁜 말을 하는 자는 바로 나의 아버지다. 얼마동안 후궁에다 유폐(幽閉)시켜라.』
이렇게 명령했다. 신하는 태자가 시키는 대로 대왕을 유폐시키고 말았다.
대왕이 유폐되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궁인(宮人)들은 모두가 옛날 대왕으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던 사람뿐이었다. 그들은 옛날을 생각하고는 조용히 왕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 부왕을 강제로 유폐시킨 태자는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포악하고 흉맹한 처사는 이로 인해서 더욱더 극심해져서 그야말로 폭군이란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 좌우에 신하가 있어도 구태여 이러한 폭정을 간언하고 중단시키는 자가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왕위를 약탈당하고, 거기에다 궁중 깊숙이 유폐 당한 빈파사라 왕 자신은, 이러한 일에 대해서 자기가 전생에서 만들었던 숙업의 보답이라고 하는 숙명관(宿命觀)으로 편하게 마음먹고 있었다.
왕비인 위제희(韋提希)는 선왕의 기갈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서 비밀리에 음식물을 나르고 있었다. 어느 때, 아쟈타샤츠 왕은 문을 지키고 있는 자에게,
『노왕은 아직도 살아 있느냐?』
라고 물었다.
『왕모(王母)가 항상 음식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아무런 변고도 없습니다.』
『뭣이라고? 어머니가 먹을 것을 가져다 준다고, 네놈은 절대로 그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노왕에게 갖다 주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엄중히 명령하고 다시 궁인들을 불러,
『노왕에게 줄 음식을 비밀리에 만드는 자가 있으면 극형에 처하겠다.』
이렇게 엄중하게 훈계했다.
이로 인해서 노왕에게 음식물을 보내는 일이 중단되고 말았다. 기갈과 공허한 며칠을 노왕은 그 안에서 보냈다. 위제희 부인은 노왕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해서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비밀리에 보리 볶은 것을 혼합해서 몸에 바르고 발에 붙인 다음, 바퀴의 구멍 속에다 음식물을 넣어 노왕에게로 가져갔다. 노왕은 이러한 부인의 정성으로 인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지기는 노왕이 죽지 않고 있는 것을 이상히 생각해서 조사를 해본 결과, 부인의 정성어린 마음씨였다는 것을 알았으나, 노왕의 크나 큰 은혜를 생각해서 모르는 척하면서 부인의 송식하는 것을 못본체 하고 있었다.
아쟈타샤츠왕은 며칠이 경과해서 문지기에게 노왕의 생존 여부를 물었다. 문지기는 위제희 부인의 일을 아는대로 대답을 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부인을 왕에게 면회 시켜서는 안된다.』
그 당시 석존은 영취산(靈鷲山)에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산보를 하고 있었다. 유폐소의 창문으로 저 멀리에 석존의 모습을 보게 된 빈사상태의 노왕은 부처님을 배견(拜見)하자 동시에 환희의 마음이 생겼다. 이러한 환희와 법열(法悅) 때문에 노왕은 다시 목숨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아쟈타샤츠왕은 또다시 문지게에게 와서 노왕의 안부를 물었다.
『노왕은 창문으로 부처님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랬더니 부처님은 자비를 내리시어 노왕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한 알, 한 방울의 음식물을 들지 않고도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쟈타샤츠는 즉시 그 창문을 밀폐하고 다시 노왕을 발목을 박아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신체가 쇠약해져 있는데다가 발에 못질을 당했기 때문에, 노왕은 그 아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방 안을 뒹굴면서 슬피 울고 있었다.
그리고는 노왕은,
「내가 지금 이렇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있는데도,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자비를 내려 주시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 석존은 목갈라나를 불러 들이고는,
『당신은 유폐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빈파사라 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부처님은 대왕의 고통을 구하고, 삼악취(三惡趣)에 떨어져서 하늘에 태어나게 해줄 것이라고 전해주고 오도록 하라.』
이렇게 명했다.
석존에게 이런 명령을 받은 목갈라나는 즉시 영취산에서 왕사성의 유폐된 왕에게로 가서 노왕의 앞에 나타나,
『대왕이여, 부처님은 대왕은 현재의 고통, 음식도 먹지 못하고 또 발에 못질을 당하는 것도, 이 모두가 대왕의 전세에서 업인(業因)에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설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했다.
그 때, 노왕은 예배하면서,
『어느 곳에 좋은 음식이 있습니까?』
이렇게 대답한 채로 목갈라나는 사라지고 영취산으로 돌아갔다.
아쟈타샤츠 왕의 왕자는 가끔 손가락에 상처를 입어, 왕에게 안고 오면, 왕은 왕자를 안으면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면서 달랬으나 왕자는 오히려 큰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하여 그치지를 않았다.
왕은 입으로 손가락의 상처를 빨아서 째고 고름 피가 왕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왕은 고름 피를 땅 위에다 뱉았다. 그 고름 피를 본 왕자는 놀라서 다시 비명을 질렀다.
사랑하는 손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울어대는 것을 들은 위제희 부인은, 그 가련함에 울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은 아쟈타샤츠왕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울고 계십니까?』
라고 물었다.
그 때 위제희 부인은,
『우리 왕가에는 증조부 이래 이러한 질병은 없었습니다. 당신이 처음으로 이 질병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너의 아버지인 왕은 너와 똑같이 고름 피를 빨았는데, 그 고름 피를 땅 위에다 뱉아 내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고름 피를 보면 오히려 무서워해서 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너의 아버지는 그렇게 까지 너희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이렇게 노왕의 아쟈타샤츠에 대한 애정이 아쟈타샤츠 왕자에 대한 사랑보다도 깊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어머니, 그게 사실입니까?』
『부왕은 정말로 그렇게까지 너를 사랑했단다.』
아버지의 자애가 그토록 깊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듣게 된 아쟈타샤츠 왕은 지금까지의 부왕에게 대한 노했던 마음이 일시에 없어졌다.
그리고 연민의 정이 생겨서 좌우의 신하에게,
『만일 노왕이 아직 생존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 맞춘 사람에게는 나라의 반을 주겠다.』
라고 이야기했다.
노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 은혜를 따르고 있었던 신하들은 이러한 왕의 말을 듣더니 모두가 서로 멀리 노왕의 안부를 확인하려고 달려갔다.
유폐소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빈파사라 왕은 많은 사람들이 떠들면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이것은 반드시 나를 잡아서 다시 여러 가지의 극형을 가하려고 하는 것에 틀림없다.」
이렇게 상상하면서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숨이 막혀서 땅 위에 쓰러진채로 불쌍히도 그대로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비참한 고통을 받았던 노왕도, 그 고통스런 가운데 부처님의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고, 이에 환희의 마음이 일어났던 선근(善根) 때문에 죽은 다음 즉시 천궁(天宮)에 다시 태어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根本說 一切有部毘奈破僧事 第一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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