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시주하고 왕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효선설화

• 주제 : 효선
• 국가 : 한국
• 시대 : 백제
• 지역 : 충청도
• 참고문헌 : 한국사찰사료집

충청도 대흥현(大興縣)에 한 장님이 살고 있었다. 성은 원(元)이고 이름은 양(良)이다.
일찍이 아내를 잃고 홀아비로서 곤궁하게 살아가는데 이웃에 의지할 만한 친척도 없고 오직 어린 딸 하나를 의지하고 살았다.
딸의 이름은 홍장(洪莊)인데 자세가 예쁘고 몸가짐이 비범하며 성식(性識)이 통민하여 지성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봉양하는 것이었다.
홍장은 조석 기거(起居)에도 잠시도 아버지의 결을 떠나지 않고 좌우에서 부축해 드리며 의복과 음식을 마음에 맞도록 하여 드리니 원근에서 그녀의 효성을 칭찬해 마지않았으며, 또한 대효(大孝)의 이름은 중국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아버지인 원봉사가 하루는 아침에 읍에 나가다가 길에서 한 스님을 만나니 그는 홍법사(弘法寺) 화주승인데 이름은 성공(性空)이었다.
성공스님은 원봉사를 보더니 문득 절하며 하는 말이,
「당신과 함께 금강불후의 인을 이루고자하오니 나를 위하여 대시주가 되어 주십시오.」
갑작스런 말을 들은 원봉사는 어리둥절하다가 대답하기를,
「나는 아주 가난한 처지인데 어떻게 힘이 되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소승이 권선책(勸善冊)을 처음 받은 어젯밤 꿈에 어떤 금인(金人)이 현몽하시기를, (내일 아침에 길을 나서면 반드시 맹인(盲人)을 만날 것이다. 그는 너를 위하여 대단월(大檀越)이 될 것이니라.)
하셨으므로 이렇게 간청하는 바입니다.」
원봉사는 말을 잊고 한참이나 생가하다가 겨우 입을 연다.
「집에는 곡식이라곤 한 톨이 없고 들에는 한뼘의 땅덩이도 없는 터에 장차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다만 내게 작은 딸 하나가 있을 뿐인데, 이 아이라도 팔아서 귀사(貴寺)의 법당을 중수하는 자금에 보태 쓰십시오.」
원봉사의 딸인 흥장은 이 때 겨우 2·8(16세)의 나이였다.
화주승은 흔연히 응낙하고 원봉사를 따라 그의 오두막집으로 갔다.
아버지에게서 화주승과 언약한 얘기를 들은 홍장은 아버지와 함께 애통하게 울기를 마지않으니 산천도 변색하고 일월도 빛을 잃으며 새는 떨어졌다.
이제 흥장이 화주승을 따라 나서니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을사람들도 길을 메우며 옷깃을 적셨다.
홍장이 화주승과 함께 길을 걸어가는데, 산 넘고 고개 넘어 고향을 등진지 꽤 오래되자 심신이 피곤하여 바다가 보이는 소량포(蘇浪浦) 언덕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다.
홍장과 화주승은 서쪽 바다를 향하여 앉아 쉬면서 우두커니 바다에 눈을 던지고 있는데, 바다의 저쪽 수평선상에서 붉은 배두척이 나타나더니 질풍같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이었다.
나는 화살처럼 순식간에 나루에 다달은 배는 모두 중원(中原)의 배였고, 배에는 금관옥패(金冠玉佩)하고 수의(繃衣)를 입은 사자(使者)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언덕에 앉아 쉬고 있는 홍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배에서 내려 그녀가 쉬고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그녀에게 절을 하고 말하기를.
「참으로 우리 황후마마이십니다.」
홍장이 얼굴빛을 고치며 묻는다.
「여러분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저희는 진나라(晋國) 사람이온데, 영강정 해년 오월 신유일(永康T亥年五月辛酉日)에 황후께서 붕거 (崩去)하시고 이로부터 성상(聖上)께서는 늘 슬픔을 가누지 못하시더너 하루는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시어 성상께 사뢰기를,(성상의 새 황후께서 동국(車國)에 탄생하시어 이제 이미 장성하셨고 단정하기는 전 황후보다 더하시니 이미 가신 이를 위하여 과도히 슬퍼 마십시오.)하시는지라, 성상께서 꿈을 깨시고는 날이 밝자 곧 폐백(幣帛) 사만단(四萬端)과 금은진보(金銀珍寶) 등을 갖추어 저 두 배에 실으시고 또 상(相) 잘 보는 지혜가 날카로운 자를 선택하사 사자를 삼으시와 신칙을 내리시되,
「동국으로 바로 달려가서 황후를 물색하라.」
하시었으므로 소신 등이 외람되이 이 명을 받잡고 본국을 떠나온 이래로 숙야(H夜)로 근심 하옵더니 이제 다행히 성의(盛儀)를 여기서 뵈옵게 되었나이다.」
사자의 긴 설명을 듣고 난 흥장은 길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고는,
「내 한 몸이 가고 오는 것이야 무엇이 두렵겠습니까만‥‥‥ 가지고 오신 폐백이 얼마나 되옵니까?」 「네, 두 배에 가득 실은 것이 모두 값진 보물이옵니다.」
「내 몸은 이미 아버님을 위하여 선근종자를 심어 드리기 위한 몸입니다. 그러하오니 두 배에 싣고 오신 보물을 이 화주스님께 드리시면 기꺼이 따라가오리다.」
이렇게 하여 두 배에 싣고 온 보물은 모두 흥법사로 날라다 드린 뒤 사자들은 홍장을 모시고 진나라로 돌아갔다.
흥장이 진나라에 당도하여 대궐로 성상을 배알할 적에는 둥근달 같은 얼굴 모습에 별빛 같은 두 눈이 반짝거리며 광채가 사람을 쏘아 비추는지라 성상께서 보고 찬탄하시되,
「바다의 한 모퉁이인 접역(接域)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더란 말인가?」
이로부터 총애가 날로 깊어지고 황후의 말이라면 무어든지 모두 들어주는 것이었다.
황후가 된 홍장은 품성이 단아하고, 자애로운 위의가 하늘보다 켰으며, 항상 정업(淨業)을 행하기를 힘썼다.
그래서 석장(石匠)을 명하여 마노탑(瑪瑙塔) 3천을 조성하여 여러 나라에 나누어 모시도록 한 뒤 황후는 말하기를,
「내 비록 보위에 오른 몸이지만 어찌 본국을 잊었으리오?」
또 53불과 5백 성중(聖衆)·16나한(羅漢)을 조성하도록 하여 사람을 시켜 3척의 석선(石船)에 실어 본국에 보내니 그 배는 감로사(甘露寺)에 모셨으며 또 풍덕현(豊德懸) 경천사(擥天寺)에도 운반해 세우도록 하였다.
또 그의 아버지의 복전(福田)을 위하여 불상과 탑을 조성하여 대흥현 홍법사에 모셨다.
이렇게 왕복하기를 다섯번이나 하여 공덕을 원만하고 지원(志願)을 이미 마친 뒤, 최후로 황후 자신의 원불(顯佛)로 한분의 관음성상(觀音聖像)을 조성하여 사람을 시켜 석선에 실어 동국으로 보내면서 신칙하여 명하기를,
「이 관음상은 어디든지 배가 닿는 대로 그 자리에 모시도록 해라.」
사인은 명을 받들어 동국을 향하게 하니 그 배는 바다에 표류하기를 한달만에 흘연히 바람을 따라 낙안(樂安)땅 단교(斷橋)길에 정박하게 되었다.
얼마 안되어 이 땅을 지키는 수비병들이 황당한 배인가 의심하여 그 배를 추격하여 붙잡으려 하니, 그 석선은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스스로 움직여 바다 깊숙이 가버리는 것이었다.
이튿날, 옥과(玉果)땅 처녀 성덕(聖德)아가씨가 무단히 집을 나와 해변에까지 이르렀는데 홀로 서서 멀러바다를 바라보니 아득히 머언 해운중(海雲中)에서 한척의 이 작은 석선이 떠서 마치 이쪽에서 끌어당긴 것처럼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성덕아가씨가 서 있는 곳에 이르자 성덕이 그 돌배를 바라보니 돌배 위에는 관음상(觀音金像)이 앉아 계시는게 아닌가.
그녀는 문득 공경스러운 마음이 일어서 몸을 땅에 던져 예배를 드리고는 친히 관음상을 등에 업으니 가볍기가 홍모(鴻毛)와 같았다.
그녀는 낙안의 바닷가를 출발하여 고향인 옥과 땅으로 향하는 도중에 12개의 정자를 만나 쉬어 갔다.
처음 쉰 정자의 이름은 알 길이 없고 두 번째 쉰 정자는 대추정(大棘亭)이고 세 번째는 새암정(泉亭)이다. 그리고 네 번째는 불휴정(佛休亭)이라 하는데, 이 곳은 조그만 등성이의 재(峙)이다.
일곱 번째는 흥복정 (興福亭), 여덟 번째는 현정(玄亭), 아홉 번째는 삽정(播亭), 열 번째는 구일정(九日亭)이다 여기서 담양(潭陽)땅의 추월산(秋月山)으로 갈까, 아니면 옥과현(玉果縣)의 설산(雪山)으로 갈까 하고 망설이다가 다시 관음상을 업어 모시고 구일정을 출발하였다.
그래서 열한 번째 쉰 곳이 운교(雲橋)라는 동리 앞의 정자였다.
운교정(雲橋亭)을 떠난 그녀는 숨이 턱에 닿는 고개를 넘게 되었으니 이 고개는 하늘에 맞닿았다 하여 하누재(天峙)라 부른다.
지금까지 이백여리를 걸어오는 동안 관음상을 업었음에도 그 무게를 의식치 못하리만큼 가벼웠었는데, 이 하늘재를 올라서니 마치 태산을 짊어진 듯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성덕아가씨는 관음상을 모실 인연터가 가까워 왔음을 감지하고. 고개를 넘어 터를 잡으니 이 곳이 바로 현재의 관음사(觀音寺) 자리이다.
그래서 성덕아가씨의 원력으로 큰 가람을 지어 관음성상을 봉안하고 절 이름을 관음사라 하고 산 이름은 성덕아가씨의 이름을 따서 성덕산(聖德山)이라 하였다. 한펀 홍장의 아버지 원봉사는 홍장이 떠난 뒤로 날마다 눈물로서 세월을 보내다가 성공스님으로부터 진황후가 되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도 반가워 번쩍 눈을 뜨니 천지가 교교하여 그보다 더 밝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 설화는 후세 여러 차례 윤색을 거쳐 저 유명한 심청전(沈淸傳)이 되었다 하는데, 심청전에는 심봉사의 이름과 딸의 이름이 다르고 또 심청이가 뱃사람에게 팔려 인당수에 빠져 들어간 것이 극적으로 묘사되어 문학적 색채가 농후하지만 이 글은 순수한 사기로 원형 그대로를 전하고 있다.

<韓國寺訓史料集>

연관목차

747/1978
효선설화
호국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