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의 비석

정몽주의 비석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호국설화

• 주제 : 호국
• 국가 : 한국
• 시대 : 고려
• 지역 : 황해도
• 참고문헌 : 불교설화대사전

고려의 서울 개성(開城)은 명승고적이 많다.
그중 하나가 선죽교(善竹橋)라는 것이있다.
이는 고려의 명정승 정몽주가 조선의 시조 이성제의 부하인 조영규(趙英珪)에게 철퇴로 암살당한 곳으로 전해진다.
정몽주도 고려의 주춧돌과 같은 대신이었다.
그러므로 공양왕 때 고려가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다른 대신들은 모두 당시의 세도가 이성계의 편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고려의 왕위를 찬탈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한 이성계는 그의 부하로 하여금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암살해 버린다.
이렇게 해서 고려는 멸망하고 세상은 이씨의 것이 되었다.
조선은 정몽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선의 관직인 의정부의 영의정이라는 직책을 수여하였으며 또 비석을 그의 묘지에다 세웠다.
이 비석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밤 심한 우뢰와 번개가 쳤다.
그 이튿날 아침 정몽주의 묘지에 새로이 세워 두었던 비석이 산산조각이나 있었다 한다.
이는 예의에 어긋난 것은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하여 정몽주의 자손들이 새로 고려의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이라는 직책으로 다시 고쳐 세우자 이상하게도 어떠한 천둥번개라도 정몽주의 비석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한다.
지금도 그 묘지에는 당시의 비석이 그대로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팔역지」에 수록된 설화 중의 하나이다. 「팔역지」의 저자는 이 사건을 전하면서
「정말 놀랄 만한 충성어린 혼백은 죽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 또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 평하고 있다.
충성스런 혼백은 죽은 후일지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주의는「팔역지」의 저자에 의해 환기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또 한 가지 사실을 덧붙여 지적하고 싶다.
즉, 그것은, 귀신은 예의에 어긋난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관념이다.
예의에 어긋난 것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마땅히 모셔야 할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모시면 귀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높은 관직을 수여하고 또 훌륭한 비석을 세워 준다 하더라도 정몽주는 고려의 신하로서 목숨을 바친 사람이기 때문에 새로운 조선의 왕조로부터 제물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관직이 낮다 하더라도 고려의 신하라는 표시의 관직을 새기고 또 자기 자손들이 세운비석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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