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이 은혜를 갚다

꿩이 은혜를 갚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보은설화

• 주제 : 보은
• 국가 : 한국
• 지역 : 강원도
• 참고문헌 : 불교영험설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치악산은 뱀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여기에 상원사(上院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 계임(戒任) 스님이라는 수좌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법당 뒤로 산책을 하러 올라갔더니, 큰 구렁이 뱀이 독기를 뿜으며 꿩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꿩이 날아가려다가 떨어져서 기지도 못하고 푸드득거리고 있었다.
너무도 불쌍하고 측은하고 안타까워서, 계임스님이 손에 들었던 주장자로 구렁이 머리를 때리며
「아무리 미물 짐승이기로서니 부처님 도량에서 살생을 하려고 하느냐.」
하고 꾸짖었더니, 꿩을 놓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날 밤 3경이나 되어서 백발노인이 계임스님이 처하는 노전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인사를 하고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서 말을 하되
「나는 옛날에 이절에 있던 중이었는데 어느 때에 범종을 조성하려고 시주를 거두어서 대종을 주조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부족하였던지 종소리가 도무지 잘 나지 않아서 그 죄로 구렁이 뱀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시장하여 꿩 한 마리를 잡아 요기라도 해 보려고 하였더니 스님이 방해하여 꿩을 놓쳐 버렸으므로 아직도 굶고 있으니, 스님이 꿩 대신 나에게 먹혀야 되겠습니다.」고 한다.
계임대사에게는 청천의 벽력이었다.
혼잣말로
「자비가 집벙거지라더니, 그 꼴이 되었구나. 대단히 잘못하였으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건 안 됩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픈데 어떻게 용서를 하겠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스님이 이미 보살의 자비심을 발하여 꿩을 살려 주시었으니 이 구렁이의 배고픈 사정도 알아 주셔야 될 것이 아니겠소.
옛날에 시비왕(尸毘王)은 비둘기가 매에 쫓겨서 겨드랑 밑으로 들어오거늘 매가 날아와서 비둘기를 내놓으라니까, 못내놓겠다고 거절하고 자기의 살을 베어 대신 주겠다고 해서 살을 베어 내려하매 매가 말하되 내가 더 가져가도 아니 되고 당신이 덜 주어도 안되니, 비둘기를 저울의 추로 정하고 왕의 살코기를 베어서 저울에 다니까 저울추의 비둘기가 점점 무거워져서 왕의 살을 다 베어주고서도 아끼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가리왕(歌利王)도 인욕행자의 몸을 깎아 베어냈어도 진심(瞋心)이 없었으며 상자리(尙慈梨)는 선정에 들었다가 깨어본즉 산새들이 머리위에 깃을 들이고 알을 품고 있는지라, 그 알을 무사히 까가지고 가도록하기 위하여 다시 선정에 들어서 그 새들이 알을 까 키워서 날아간 뒤에 일어났다 하며, 살타왕자(薩唾王子)는 주린 호랑이에게 몸을 던져버린 일도 있는데, 스님은 어찌하여 남의 밥을 빼앗아 날려보내 놓고 당신의 몸은 인색하게 아끼십니까?」
하고 윽박지른다.
「내가 뒤치닥거리 할 생각도 못하고 섣불리 자비심과 동정심을 내어서 일을 저지른 것이니 용서하여 주시오.」
「그건 안 될 말이니 어서 당신의 몸을 내게 바치시오.」
「스님은 그 법이 아니라도 무엇이든지 잡아먹고 살 수가 있지 않겠소, 그런즉 나를 용서하시오.
나는 성불을 목표하고 지금 수행을 하는 중인데 이 몸이 없으면 어떻게 공부를 계속하여 성불을 하겠소.」
이와 같이 육박하고 애원하는 사이에 밤은 어느새 깊어졌다.
백발노인이 다시 말하되
「그렇다면 좋은 수가 있습니다.」
「좋은 수라니, 무슨 수입니까?」
「스님은 공부가 높으신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옛날에 내가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소리가 나지 아니하여서 상원사의 뒷 마당에 버려져 있는 그 종에서 밝은 종소리가나서 허공에 가득하게 하여 주시오.
그리하면 내가 종소리를 듣고 이 뱀보를 벗어 인간에 다시 태어나면 중이 되어서 수도를 하겠소이다.」라고 한다.
계임대사는 이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하여 그리 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때에 밤 시간으로 5경이나 되었는데 난데없이 밝은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종소리가 들려오되 한소리는 크고 한소리는 작아서 종의 음절이 맞고 조화가 되어서 그야말로 리듬이 잘 맞아 울려 퍼졌다.
「댕동 댕동 도르랑 댕동, 병동 도르랑 댕동.」
이와 같이 소리가 작아졌다가 커지고 커졌다가 작아지고 하여 자웅성(雌雄聲)으론 한 시간을 이어 울렸다.
이 종소리는 종체기용(從體超用)하고 섭용귀체(攝用歸體)하는 선지(禪旨)를 표시하는 것이다.
살활(殺活)을 자재하는 종문(宗門)의 본지(本旨)를 선양하는 불교의 정악(正樂)이기도 하여 의미가 깊은 것이었다.
백발노인은 이 종소리를 듣더니
「나는 저 종소리를 듣고 뱀몸을 벗어 천도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시체가 남쪽 처마 밑 땅속에 있으니 망승(亡僧)의 예를 물아서 잘 화장하여 주십시오.」
하고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계임스님이 그 종이 울리는 자리를 가본즉 암꿩과 숫꿩 두 마리가 종 옆에서 입부리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계임스님은 노인의 유언에 의하여 죽은 구렁이에게 잘 염불하여 화장을 지내주고 꿩 두마리도 잘 거두어 독경과 염불로 천도 화장하여 주었다.
그러고 보니 한쌍의 정은 살신(殺身)으로써 목숨을 구해준 계임스님의 은혜를 갚아주고, 구렁이는 계임스님 때문에 이고득락을 하였으니. 기이한 인연이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 이 산을 치악산(雉岳山)이라 고쳐 부르고. 꿩이 종을 쫓는 소리를 옮겨서 기침종(起寢鐘)으로 치게 하였으니 이로써 국내 각 절마다 다 같이 꿩이 쪼는 소리를 옮겨, 밤 12시를 지나서 한시나 두시가 되면 5경의 기침종이라 하여 처음에는 사람이잘 들리지 많을 정도로
「댕동 댕동 도르량 댕동, 댕동 댕동 도르랑 댕동.」
하고 장단을 맞춰서 작은 종소리를 올려치고 마지막에는 소리를 죽여서 내려치다가 올려 치게 되었다.
그래서 올려쳤다가 내려쳤다가 하기를 한 20분간을 계속 치고 있는데, 어느 절에서든지 큰 절에는 밤마다 5경만 되면 부전스님이 먼저 일어나서 이 기침종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기침 종소리를 들어볼래야 틀어볼 수도 없고, 또 이런 식으로 종을 칠 줄 아는 스님네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6, 70이 넘은 노장스님이라면 이 기침종을 칠 줄 아는 스님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바치는 종을 잘 조성하지 못하면 죄가 될 뿐만 아니라 요령이나 경쇠·태징·바라·광쇠·풍경·북등 다소리가 잘 나는 것을 구해 놓아야 복이 된다고 하였다.
때문에 종불사에는 각별히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불상(佛像)도 원만한 덕상으로 잘 조성하여 모셔 놓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죄가 된다고 하는 것이니, 불전에는 무엇이든 잘 만들어 놓으면 공덕이 되고, 잘 만들어 놓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인즉 덮어놓고 아무렇게나 만든 것을 구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제도의 표징으로 의식(儀式)을 거행함에 있어 사대악기(四大樂器)가 있으니 공계(空界)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운판(雲板-구름 조각 모양으로 만든 것)을 치며, 육축(六畜) 중생을 위해서는 소가죽으로 만든 북, 법고(法鼓)를 치며, 어족(魚族)중생을 위해서는 나무로 만든 목어(木魚)를 치며, 지옥(地獄) 중생을 위해서는 범종(梵鐘) 즉 대종(大鐘)을 친다.
종을 치는데는 조석으로 종송(鐘頌)을 외우며 치는데 아침 종승으로는,
원컨대 이 종소리가 법계에 두루 퍼져서
철위산(지옥에 있는 곳)의 어둠은 다 밝게하고
삼도(지옥·아귀·축생)가 고뇌를 여의고 도산지옥이 부서저서
일체 중생이 다 정각을 이루어지이다.
顯比鐘聲遍法界 鐵圍幽暗悉皆明
三途離苦破刀山 -攻衆生成正覺

라고 외우며, 그리고 저녁 종송으로는

종소리를 듣고 번뇌를 끊으며
지혜가 증장하고 보리가 출생하여
지옥을 여의고 삼계에 뛰어나서
부처를 이루어 중생제도를 원하나이다.
聞鐘聲煩惱斷 智懇長菩提生
離地獄出三界 願成佛度衆生

이러한 종송과 주문과 염불을 소리내어 외우며 치는 것이다.
또 조석으로 대종(大種)을 치는데, 새벽에는 스물여덟번(二十八槌)을 쳐서 천계(天界) 이십팔천(二+八天)의 중생을 위함이요,
저녁에는 설흔여섯망치(三十六槌)를쳐서 색계(色界)의 십팔천(十八天)과 욕계(浴界)의 십팔 지옥중생을 위하여 근수례경(勤修禮敬)한다고 한다.
<불교 영험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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