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꽃을 피우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꽃을 피우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보은설화

• 주제 : 견성
• 국가 : 한국
• 참고문헌 : 속편영험설화

줄무늬 작은 애벌레 한 마리가 자기의 둥지였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햇빛 찬란한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곧 자기가 태어난 그 나무의 잎을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작은 애벌레는 그렇게 나뭇잎을 갉아먹자 배도 부르고 또 몸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먹는 일을 중단하고 생각하여 보았다.
『왜 먹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이렇게 살아서 뭘 해― 아무 뜻이 없잖아.』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 그 나무를 내려와 버렸다.
내려와서 보니 땅 위에는 온갖 신기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풀·흙·나무·오이·참외·수박 등 그러고 자기보다도 크고 작은 벌레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어 이리 뛰고 저리 날고 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고 또 재미가 있었다.
『정말 세상은 멋있는 걸. 진작 내려올 것을 그랬어.』
그렇게 후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재미는 순간순간 흘러가고 그 대신 짜증스런 일들이 더욱 많아졌다.
애벌레는 어느 날 멀리 길을 따라 가보니, 자기와 똑같이 생긴 것들이 줄을 이어 가고 있었다.
어찌나 몸이 꼭 같이 닮았던지 하마터면 흥분하여 부딪칠 뻔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우스웠으나 각자 먹는 것에 팔려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다.
『저들도 나 모양으로 별수 없구나―』
애벌레는 또 한 번 탄식하고 호기심에 그들이 걸어가는 뒤를 따라 계속해서 가보았다.
그러나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의심이 나서 옆의 벌레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냐?』
『나도 몰라. 어디로 가는지.』
『그러면 왜 가니―』
『저들이 가니까 나도 그냥 따라가는 거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나와 다를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왕에 따라 나섰으니 더 좀 따라가 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따라 가다가 보니 무슨 기둥나무 같은 것이 높이 솟아 있었다.
그것은 애벌레와 애벌레가 차곡차곡 기어올라 하나의 탑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밑에 깔린 것은 이미 화석이 되어 있고 위로 올라 있는 것들만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오르다 보니 땀이 비오듯 하며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앞에서 노랑 줄무늬를 가진 애벌레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보지 않았을 때는 무조건 밟고 올라갔는데 서로 눈이 마주친 후에는 더 이상 짓밟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어디로 가니?』
『나도 몰라, 저 위에 간다면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무조건 가는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애벌레에게서만은 따뜻한 정을 느꼈다.
그래서 넌지시 눈짓을 하면서 말했다.
『야, 우리 저 한쪽으로 가서 이야기나 좀하고 가자.』
그래서 그들은 옛 고향 이야기로부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선조에 대한 이야기, 친구·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주고 받았다.
너무나도 재미가 있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지내다 보니 어떻게 정이 들었는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아내가 된 노랑 애벌레는 줄무늬 애벌레를 철썩 같이 믿고 하늘같이 높이 우러르며 사랑하는데 남자 애벌레는 이상하게도 짜증만 내고 있었다.
『내 그 끝이 어딘지 몰라서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저것을 만나 가지고 뜻을 못 이루었잖아.』
이렇게 속으로 되 뇌이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
그때 여자 애벌레가 물었다.
『왜 그래?』』
『나도 몰라.』
『나도 모르다니, 자기가 짜증을 내면서 모르기는 왜 몰라.』
『아니야―』
『아니긴 또 뭘 아니야. 말좀해봐, 괜히 불안해지는데―』

그때서야 남자 애벌레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게 뭐야, 맨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무슨 재미가 있어야지―』
『이것이 재미지, 이보다 더 좋은 재미가 어디 있어―』
『사내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본다 한곳도 가보지 못하고, 난 재미가 없어―』
이런 일이 있은 뒤로는 늘상 서로 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가야 한다느니.』
『가서는 안 된다느니.』
『가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느니』
하여 날마다 분란이 없는 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는 화를 내면서 기필코 길을 퍼나겠다고 우겨댔다.
하는 수 없이 노랑 애벌레도 승낙하였다.
『잘 갔다 와.』
그들은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졌다.
남자 애벌레를 떠나보내고 돌아온 노랑 애벌레는 그렇겐 허전할 수가 없었다.
매일 매일 눈물을 흘리며 기원했다.
『가다가 발병이나 나서 돌아오던지 아니면 빨리 목적을 달성하고 오시라.』
손발을 비비며 기도하였다.
그러나 기다림은 참으로 지겨운 것이었다. 그의 얼굴이 노래지다 못해 흰빛으로 변해갔다. 참으로 사랑 병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옛날 같으면 뭇 벌레들을 발아래 밟고 날아다니다 시피하던 노랑 애벌레였건만 그만 지순한 여인이 된 것이다.
『어떡한담, 마지막 한번만 더 문밖을 나가리라.』
하고 나갔다.
그날은 눈물도 잊고 먼 산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서성거리는데 소나무 밑에서 어떤 애벌레 한마리가 부지런히 실을 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쫓아가서 물었다.
『무얼 하십니까?』
『실을 잣습니다.』
『실을 잣으면 뭐 좋은 일이 있습니까?』
『좋은 일이 있구말구요, 나비가 된답니다.』
『나비? 나비가 되면 어찌됩니까?』
『나비가 되면 기어 다니지 않고 날아다닌답니다.』
『거 참 좋겠네요.』
『좋구말구요, 그래서 나는 실을 잣습니다.』
자기의 몸을 짜내 실을 빼는 여인―그 여인이야말로 무서운 여인임을 느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여인도 사람에 배신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처지가 비슷했다.
그래서 나비가 되어 그곳에 직접 날아가 애인을 만나보기 위해서 실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신기했다.
노랑 애벌레가 물었다.
『누구나 그렇게 실을 뽑을 수 있나요?』
『있구말구요, 저 저 모든 고추가 다 실을 뽑아 만든 애벌레들의 나비랍니다.』
머리를 돌려보니 수많은 나비집들이 대롱대롱 달려있고 그 옆에 몇 마리의 나비가 짝을 지어 날고 있었다.
『나도 나비가 되어야지―』
이렇게 생각한 노랑 애벌레는 그대로 나무에 매달려 실을 뽑기 시작하였다.

한편 남자애벌레는 옛날 올라가다가 내려왔던 그 기둥나무와 같은 애벌레들의 동산에 이르러 막 타고 오르려 하는 순간 무엇이 위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살펴보니 수 십 마리의 애벌레들이 쓰러져 죽었는데 그 가운데 한마리가 금방 쓰러져 죽으면서,
『나비가 되어 보아야만 알아, 나비가』
하였다.
『나비 ? 나비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그건 귀에 슬쩍 지나는 말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올라갔다.
그동안 쉬기도 하고 아내의 사랑도 많이 받았겠다. 전 힘을 다해서 올라가서 단번에 90퍼센트 이상을 올랐다. 올라서서보니 세상엔 애벌레 기둥이 많기도 하였다.
곳곳에 빌딩처럼 수없이 많은 애벌레 기둥들이 높이높이 솟아있는데, 모두 그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장님이라 하는 애벌레들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줄무늬 애벌레는 그때사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것이로구나, 그래서 나비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구나.』
그런데 이제 거기서부터는 더 이상 안올라 가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놈들이 워낙 큰 힘으로 밀고 올라오니까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오르다가 밑으로 꼬구라지곤 하였다.
『아 가련한 세상.』
그러나 이제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자 애벌레는 그만 체념하고 깊은 사색에 빠졌다.
『기껏 올라온다는 것이 이거냐―』
그렇지만 방심만 하면 어느 틈엔가 천야만야(天也萬也)한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때문에 온갖 힘을 다하여 버티고 있었다.

어느 햇빛 맑은 날이었다.
몇 번이고 몸이 데롱 데롱 떨어질 뻔하여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는데 위에서 어떤 큰 날개를 가진 것이와서 자기의 머리를 꼭 조였다.
그동안 온갖 신고 끝에 나비가 된 아내가 찾은 것이었다.
몸은 나비가 되었지만 생각만은 달라질 수 없었다.
그래서 갖은 고행 끝에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가 옛길을 찾아 그곳에 온 것이다.
『내려가요, 죽더라도 용기를 내이 내려가요.』하고 말없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구르기 시작하였다.
위험한 공중서커스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듯 그는 무사히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비가 곧 날아와서 입에 물을 축여죽지는 않고 살았다.
옛 이별지에 가보니 나뭇잎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있다.
나비의 휘나래를 따라 어느 솔잎사이에 다다르니 자기의 나비집을 가기키며
『당신도 이렇게 나비가 되라.』
하였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실을 빼서 줄무늬 나비가 되었다.
나비가 된 줄무늬 나비는 노랑나비와 함께 짝이 되어 세상 구경을 하고 다니는데 그렇게 재미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동쪽, 내일은 서쪽, 모레는 남쪽 하늘 식으로 곳곳을 살피며 재미있게 유람하였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애벌레들의 아귀다툼이 피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쌍하다 불쌍해, 나비가 될 줄은 모르고 에이 바보들-』하고 업신여겼다.
그때 노랑 애벌레가 말했다.
『여보, 나비가 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줄 아십니까?』
『의미가 있지, 세상구경하고 날아다니면서 사랑하고 이 얼마나 좋아, 이것보다 더 큰 의의가 있어?』
『있구말구요,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비가 된 데는 관광하는 데 의미가 있는게 아니고 꽃을 피우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꽃 없는 세계는 황막해요. 그래서 우리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 나비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구경도 그만 다니고 각각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꽃을 피웁시다.』
생각하여 보니 참으로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이튿날부터는 한번도 함께 한길을 날지 않고 따로따로 다니면서 꽃 한송이라도 더 피우려고 노력을 하여 세상이 온통 꽃밭으로 변하게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설화다.
우리 불자는 누구나 성불하여 불법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산다.
그리고 모든 애벌레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자비심으로 구원하여 모두 다 나비가 되어 극락세계의 꽃밭을 장엄하도록 길을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속편영험설화>

연관목차

823/1978
보은설화
견성설화
자재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