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등대는 건립 당시에는 최신식이었다

영도 등대는 건립 당시에는 최신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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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공간
  2. 소품

조선을 강점하려 했던 일제는 부산항이 발달하자 영도에 등대를 건설한다. 1906년 5월 21일 착공해 반 년만인 동년 11월 30일에 준공한 등대는 당시로서는 첨단인 콘크리트 건물로 방형(方形)의 외관을 갖춘 백색이었다. 등탑 높이는 26척이었다. 건물은 3층으로 만들어졌으며, 등기구 등 예비품을 보관하는 저장소와 사무실, 등롱 등을 갖추었다. 휴식소는 목조건물이었으며 3명의 등대원(당시에는 ‘감수’라 부름)이 휴식할 수 있었으며 일본식 다다미를 갖추었고 취사장을 설치하고 방한을 위하여 난방시설을 설비하였다. 서양식 외관과 일본식 내실 등 혼합적인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공간

부산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항구이다. 1876년 2월 27일에 근대항으로서는 제일 먼저 개항한 한국 최대의 항만이자 내·외무역의 관문이다. 전통시대 대일관계의 주요한 관문이었다.

소품

영도 등대

영도 등대 : 1906년12월 시작된 등대로 처음 명칭은 목장이라는 뜻의 목도(牧島)등대라 칭했다. 1948년 1월 4일 절영도(絶影島)등대로 개칭했다가 행정 편의상 절을 삭제하고 영도 등대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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