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스무마지기 배를 단 한마지 값에 보상을 받았지

논 스무마지기 배를 단 한마지 값에 보상을 받았지

분류 교통/통신/지리 > 스토리뱅크 > 에피소드 > 해양사

"영상강이 막혀부렀어요 우리하고는 약속도 없이. 약속도 안하고, 나중에 얼마 안된께 여기 사람들이 이것이 머시냐 하고 어장이라고 돈 많이 들고 살림살이가 많이 들어 있는디, 다 썩어분거죠. 그물이고 키이고, 배도 썩어불지, 말이 나와서 그랬는가, 근디 영암, 무안, 나주, 함평 저기 무지하게 많어 사람들이 여러 말이 나와준게. 그것도 높은사람들이 있고 다부진 사람들도 있고 한께 있더만. 돈 잘 준다고 준 것이 째까 주고는, 보상준다고 간께 없어. -중략- 그 크고 적고 해갔고, 가치로 해서 쪼까씩 주는디, 내가 배가 오톤짜리를 가지고 있었는디, 돈 몇십만원 받았는가 모르겄습니다. 논 한마지기 값도 못돼."

공간

영산포

고려시대 수운의 발달로 형성된 영산포는 1897년 목포항 개항과 함께 전라남도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1910년 일제는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개폐식 목교를 설치하고 1930년대에는 철근콘크리트 다리를 설치했다. 영산포역과 직선으로 연결된 다리는 나주평야의 쌀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탈해가는 수단이 됐다. 1970년대 영산강 하구언이 지어지고 배가 더 이상 드나들지 않게 되자 영산포는 포구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현재는 내륙하천에 남아있는 유일한 등대인 영산포 등대가 과거의 모습을 짐작케 해준다.

인물

신준식

신준식 : 영산포에서 선주로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으로 하구원 공사 이전에 번성했던 영산포 어업에 관해 구술한 인물.

소품

영산강 하구원

영산강 하구원 : 영산강 하구에 바닷물의 역류를 막기 위해 뚝을 세워 밀물과 바닷물을 갈라 놓은 뚝.

연관목차

2266/2347
해양기술
해양도시
해양생물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