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의 영웅은 장보고가 아니라 송징이다

완도의 영웅은 장보고가 아니라 송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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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영웅 송징은 구전으로만 전승되다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르러 비로소 기록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게 된다.
"사현(射峴)이 완도에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섬사람으로 송징이라는 자가 무용이 절륜하여 활을 쏘면 60리 밖까지 나갔다. 활시위가 끊어진즉 피가 흘렀다. 지금도 반석 위에 화살 흔적이 남아 있는 바, 그곳을 사현이라 한다." 송징의 이야기는 임억령의 <송대장군가>(《석천집》수록)를 통해서 더욱 명확하게 전달된다.

공간

완도

해남의 남쪽에 있고, 주위에 고금도·신지도·사후도 등이 있다. 고향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에 장보고가 완도읍 장좌리 장도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설치하여 운영한 곳으로 유명하다.

인물

송징, 임억령,

임억령(1496-1568) : 조선 중기의 무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사직하고 해남에 은거함. 호는 석천이며 <석천집>을 남김. 송징 : 완도 지역에 구전되어 오는 전설적인 인물임.

소품

사현, 송대장군가

사현 : 송징이 활을 쏘았던 반석에 남아 있는 활의 흔적을 말함. 송대장군가 : 석청 임억령이 완도 사람들의 숭상을 받은 송장군을 기르기 위해 지은 시. 그 내용의 일부는 “허리에 찬 화살 크기는 나무둥치만 하고, 칼집에 든 칼은 북두칠성 찌르겠네. 활을 힘껏 당기면 그 화살 육십 리를 백보 거리처럼 날고, 활촉이 높다란 벼랑에 헌 짚신 꿰듯 박히더라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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