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제국 백제의 실체는?

해양제국 백제의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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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제서』에는 490년 위나라가 기병 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했다가 크게 패했으며, 그 때 동성왕은 공훈을 세운 백제의 장군들에게 왕이나 후(候), 태수(太守) 등 관작을 줄 것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그 가운데 목간나(木干那)라는 인물은 성과 배[舫]를 부순 공이 있다고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 두 나라 사이에 대규모 해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당시에 북위는 화북 지방에 있었다. 더군다나 그때 백제가 태수직을 요구한 곳이 광양(廣陽), 광릉(廣陵), 청하(淸河) 등 중국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최치원이 당에서 벼슬을 하면서 태사시중에게 상소한 글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즉 백제가 전성기였을 때에는 강병이 1백만이며, 남으로 오(吳)와 월(越)을 침범하고, 북으로 유연과 제(齊) ? 노(魯)를 흔들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식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는 『삼국사기』열전 최치원전에 나와 있는 기록이다.

공간

서해바다

서쪽에 있는 바닷가

인물

동성왕, 최치원

동성왕(東城王, ? ~501) : 백제의 제 24대 왕. 21대 문주왕(文周王)의 아우인 좌평(佐平) 곤지(昆支)의 둘째 아들로서 담력이 있고 활솜씨가 뛰어남. 삼근왕 때 일어난 해구(解仇)의 반란을 평정한 뒤 정권을 잡은 진씨(眞氏) 세력에 의해 옹립된 왕. 최치원(崔致遠, 857~?) : 신라시대 학자. 879년 황소(黃巢)의 난 때 고변(高騈)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

소품

남제서

남제서 : 중국 양나라 때 소자현(蕭子顯)이 남제의 역사를 적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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